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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람나무 성회는...


샬롬! 주의 평강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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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83회 25-12-01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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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주의 평강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 롬! 주의 평강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연말이 되었네요. 감람나무 3권 예언의 말씀편이 거의 후반부에 접어들었습니다. 예언의 말씀은 사도 요한의 계시록이 그 주를 이룰수 밖에 없게 되었네요. 꿈과 이상, 그리고 선지서들을 통해 예언이라는 이 세계를 그려나가려 했으나 예상과는 다르게도 세개나 되는 챕터에서 이 요한계시록을 다루게 되었답니다. 글을 쓸때에는 당연하게도 하나님의 음성에 그 귀를 기울일수 밖에 없게 된답니다. 듣지 못한다면 당연히 쓸수도 없을테니까요. 나의 영적인 여정에서 주를 보며 그를 배우게 된답니다. 

 

>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 이는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이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 또한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랍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을, 이삭에게는 약속의 성령을, 그리고 야곱에게는 침노하는 자라는 비밀을 숨기신 것이죠. 이 세가지는 모두 생명으로 이끌기 위한 일종의 밑작업과 같은 것이랍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는 피흘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에게 참된 생명나무에로의 길로 인도하려 했던 것입니다.

 

> 그렇게 결국 예수로 말미암아 성령께서는 다시금 이 세상에 강림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들에 한해 그 인침을 허락하시게 되었구요. 성령께서는 진정한 보혜사로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일종의 깨달음이나 어떤 공감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공감의 상대가 바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끼리도 잘 소통이 되지 않는 때가 많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과 소통이 되겠습니까? 무조껀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한다고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 물론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어떤 영적인 공감상태에 이르지 못한다면 사실 이런 행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랍니다. 쉽게말해 대화를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랄까요? 무언가 닿지 않는다면 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에게도 이러한데 과연 하나님이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심을 우리안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죠. 이는 일종의 정신적 공명현상입니다. 그의 생각이 우리 안에서 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이죠.

 

 

 

> 성령의 인침은 마지막 시대로 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일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처음익은 열매들이 나타나기도 하구요. 결국 열매가 익어야만 추수때는 오겠죠. 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게 되는 것도 사실 그들이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결국 우리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추수때는 미뤄지고 또 그렇게 미뤄지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이 세가지 비유를 반드시 기억하십시요. 열처녀, 달란트,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 말이죠.


> 특별히 어린자들은 이 열처녀의 비유를 반드시 깨달아야만 합니다. 미련한 저 다섯처녀들처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예수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죄아래 있는 자를 건져올린다는 그런 의미인 것이죠. 다시말해 구원은 명확하게 죄사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세상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죠. 구원이란 무엇인가요? 구원받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건가요?  

 

> 다른 것을 말하지 마십시요. 구원이란 죄아래 갇혀있던 우리를 그가 건져내었다는 그런 뜻이랍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약속의 성령을 받지 못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죄의 소원을 다스리려면 그저 참는 것만이 답이 될수는 없습니다. 의의 소원이 필요한 것이죠. 이처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려면 성령의 인침과 보혜사로서의 그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답니다. 우리의 영이 성장하여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구원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도 마찬가지이구요. 

 

>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죠.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그런 상위적인 정보들을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이를 그냥 신뢰함으로써 받아들이라는 것이죠. 저 아브라함처럼 말이죠. 만약 우리가 약속의 성령을 받지 못한다면 이또한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물위를 걷듯이 믿음으로 그 발을 내딛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미련한 자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답니다. 반면 슬기있는 자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죠.

 

> 주 작은 것이라도 매우 명확해져야 합니다. 기도란 무엇일까? 방언이란 무엇일까? 구원이란 무엇일까? 거듭남이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우 분명하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의문이 생기면 의문을 가지고 해답을 알기 위해서 할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해야 하죠. 옳은 것은 옳다하며 그른 것은 그르다 해야 합니다. 답을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 안되겠죠. 자신의 자녀에게라도 답을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슬기있는 자가 될테니까요. 깨어있는 자가 될테니까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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