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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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긍휼 댓글 0건 조회 133회 25-02-04 23:12본문
씨 뿌리는 비유
"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13장 중에서... )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땅이 있다. 이 땅에 씨가 뿌려지니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땅인가. 모두가 이런 땅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길가가, 돌밭이, 가시떨기가 있는 땅이 좋은 땅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씀해주시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이유들로 이 땅들은 결실을 얻지 못하고 결실은 오직 좋은 땅에서나 얻을 수 있다는 그것 뿐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길가라면, 돌밭이라면, 가시떨기가 내 위에 드리워져 있다면 나는 그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깨달음에 대해 말씀하고자 하신다. 저들은 깨닫지 못하기에 결실치 못하고, 좋은 땅은 깨달음을 얻었기에 몇십몇백 배나 결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깨달음이란 어떻게 얻어야만 하는 것인가? 또한 무엇을 결실케 된다는 말인가?
자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애초에 대체 무엇을 깨달아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 있는 많은 지식들이 있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오랜시간 쌓아온 많은 학문들이 있다.
이를 깨달아야 하는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털끝만치도 못 미치는 것들에 불과하다. 우리가 진정 알아가고 배워야 하는 것들은 그런 낮은 수준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그 뜻에 관한 것에 있다. 과연 그분의 뜻에 대하여 일부분이라도 제대로 된 이해를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능케 하실 수 있으시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신다. 믿음을 통해서 말이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비유로 말함은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저들은 이 씨뿌리는 비유를 듣고도 좋은 땅이 아닌 땅은 왜 안 좋은지, 어떻게 고쳐야 좋은 땅이 될 수 있는지 그런 하등 쓸모없는 것들을 고민한다. 열심히 자기 마음의 땅을 개간하면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떻게 이루는지도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만을 가지고서 지금은 열매 맺지 못해도 나중에는 좋은 땅이 될 수 있을 거라며 자기 위안을 삼을 뿐이다. 저들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좋지 않은 땅은 결실할 수 없다. 가시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가시나무를 무화과나무로 바꿀 수라도 있단 말인가? 다시 태어나기라도 해야 가능해 봄 직한 일이다. 그렇다. 다시 태어나야만 가능성이 있다.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다. 사람이 스스로 깨달음에 이를만한 지성을 갖추기란 상당히 요원한 일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마저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조차 아니, 자신의 결핍 자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신다. 듣고 내가 좋은 땅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좌절을 겪어야만, 자신이 죄 아래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임을 자각해야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길을 내어주시지 않았던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말이다.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성령께서 인정해주시게 된다면 그때엔 비로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예수님을 통해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를 들으라 하신다. 우리는 제대로 들어야만 한다. 듣고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또 고민하고 묻고 알아가며 배우고 닮아간다. 그것이 곧 결실이요 열매인 것이다. 하나의 깨달음은 또 다른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못해도 삼십배의 결실을 하게되는 것이 아닐까. 좋은 밭은 그리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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