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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값는 것이 내게 있으니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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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5,806회 17-01-14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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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값는 것이 내게 있으니(01)"
> 앎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정보를 기억하는 행위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성경은 깨달음이란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똑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무익한 것을 던져준 것이었을까? 앎이란 단어를 그냥 깨달음이란 단어로 단지 바꿔주었을 뿐인가 말이다.
 성경의 표면적인 이야기들은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과 같다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답을 알아내는 것보다 그 답을 알아가는 과정이 사실 더욱 중요하다. 성경의 단서를 따라 가다보면 언젠가는 정답에 이르게 된다. 이 때에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정답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들이란 말이다.
 
> 나는 성경을 보고 또 보았다. 마치 성경 전체를 외운 것처럼 내 입에서는 수많은 성경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무엇을 안다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그 무엇도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실로 두려웠던 것이다. 사실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 수많은 질문들을 던졌고 모든 것을 의심해야만 했었다. 누군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을까 해서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녔었고 새로 나오는 책들을 모조리 읽기도 했었다. 크고 유명한 교회의 목사들은 나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만의 전략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고 또 숨겨진 비법들이 있는 것 같았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인상깊은 책들을 통해 깊은 공감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저자의 생각과 삶이 실제로는 매우 다르다는 것에 크게 실망하게 되었다. 이 저자는 과연 어떤 경험을 한 것일까?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그 자신이 진실이라 믿으면 그 누가 그것을 거짓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들이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 자신을 속였을지라도 나까지 믿어줄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앎이란 끝까지 의심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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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이란 단서는 끊임없이 의심하는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왜냐하면 생각의 끝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음이라는 무언가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 생각의 끝에 이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의 끝에 이르게 되면 무언가를 보게 된다. 어떨 때는 사울을 또 어떨 때는 다윗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며 결국은 하나님을 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이면엔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때문에 그의 모든 창조물들은 그의 뜻을 담고 있는 그릇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전엔 내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아는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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