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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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9,456회 13-02-12 18:23본문
>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심장 소리가 크게 들릴 때가 아마도 한 두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이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리고 이 감정이란 무엇일까?
누군가 나를 향해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해 온다면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어릴 적엔 이런 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마치 대화 자체를 기피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감정이 처음 내게 찾아왔을 때에는 결코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죄책감에 가까웠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키가 큰지 작은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심지어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인지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 내가 가난하구나 하고 말이다.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준 장본인이 첫 짝사랑이랄까? 감정이란 두가지 이유로 발생한다. 첫째 이해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그리고 둘째 이해하게 될 때 발생한다. 언뜻 들으면 무조건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첫째 이해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감정은 부풀려진 환상과 같다. 모르니까 좋아라 한다. 알고 나면 감정이 식는다. 반대로 모르니까 무시하거나 비하해 버리곤 한다. 이런 감정은 알게 되도 풀리지 않는 경우가 더욱 많다. 안티들은 절대 용서를 모른다랄까? 둘째 이해할 때 발생하는 감정은 긍휼이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대표적이다.
> 그리고 보호하려는 마음이나 대등한 관계를 이루고 싶어하는 마음같은 것도 여기에서 나온다. 반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고 미워라 할 수 밖에 없는 감정들도 있다. 속이려 하는 자에게 속고 싶지 않은 감정이랄까? 거짓말이 몸에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음란한 마음이 가득한 이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감정은 더욱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나 보다. 감정이란 어떠한 방향성도 띠지 않는다. 좋은 감정이 있고 나쁜 감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감정은 순수한 에너지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 이 에너지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감정이 방향성이 없다면 무엇이 방향성을 띠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관계이다. 친구라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며 연인이라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감정이 발생하는 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시기나 질투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 자체가 방향성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감정의 주체가 되는 이가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될 때 나타나게 되는 것이 이 시기와 질투이다. 가인이 보기엔 동생 아벨이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동생 아벨이 너무나 쉽게 믿음을 인정받았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 이런 감정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은 정말 고생 고생해서 하나씩 하나씩 이뤄 가는데 어떤 애는 너무나 쉽게 그것을 이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친해지고 싶기도 하지만 막상 기회가 왔을땐 자기도 모르게 차디찬 말을 뱉는다. 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일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감정이란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만 그 뿐 감정은 변화하기 쉽고 예상하기 어려울 뿐이지 본래 여러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에너지와 같은 모습이 전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흔들리는 감정이 방향성을 띠는 것은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 그리고 물론 그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 또한 그 감정을 기반으로 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는 관계는 이런 감정이 매우 중요하다. 발생은 이해하는 것에서 나온다. 하나님을 이해하게 될 때 감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찬양을 하면서 많은 슬픔을 느낀 적이 있다. 사람들을 향하여는 마음이 뜨거우나 하나님을 향하여는 너무나 차가운 것을 보고는 슬퍼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었다. 하나님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뜨겁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요. 이런 말도 안되는 몰지각한 기도를 한 것이다. 그것도 진심으로 말이다. 다행스런 일은 주께서 이에 대해 꾸짖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셨다는 것이다.
> 나를 사랑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단다. 네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네가 나를 안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사랑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우니라.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몰지각한 행동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달라니 하나님께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감정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감정이 없는 사랑은 과연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주께서는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 우리가 배우는 하나님의 사랑은 순수한 에너지와도 같은 감정을 점점 키워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들에게는 긍휼의 마음을 또 어떤 이들에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는다. 그리고 어린 자들에게는 섬기는 마음을 품는다. 그리고 같은 길을 가는 형제들에게는 신뢰와 사랑을 나눈다.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 안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은 과연 나만 마시는 것이 맞는 것일까? 흘러 넘쳐난다고 하지 않던가?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넘쳐나서 우리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것이 아마도 옳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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