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_img3.png



주 앞에 서는자 (0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9,262회 12-09-25 06:16

본문

 > 이 시대의 사람들은 좁은 길이 아닌 넓고 편한 길을 가고자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
 절대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되뇌이곤 한다. 분명 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자세히 보면 주변엔 사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신조차도 말이다. 휑하니 넓은 길만이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존재의 정의는 가치에서 나온다. 보통 쓸모없는 물건들은 버리고 가치있는
 물건들은 잘 보관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존재의 정의는 그 가치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영원히 존재해도 될만큼 가치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믿음, 소망, 사랑이 영원히 존재할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주장하고 있다.
 
> 우리의 존재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전혀 궁금해지지 않는다. 변화도 없고 예상을 넘지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마치 드라마같은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드라마조차도 식상해지고 그 주인공조차도 그저 그렇게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또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또 그렇게 잊어간다. 영원함이란 인간에게 있어 어쩌면 불가능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영원함을 꿈꾸며 잔혹한 연쇄 살인을 행하여 시대의 두려움으로 남아 스스로가 이모탈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그저 지나갈 뿐이다. 그저 잊혀져갈 뿐인 것이다. 마치 유행처럼 말이다.
 
> 때문에 결혼이라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이 된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그러하다. 둘이 만나 아무리 사랑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둘은 둘일뿐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둘이 처음부터 하나였다면 어떠할까? 단지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그 기반을 삼아 하와를 지으셨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둘이 하나라 주장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다르고 존재가 다른데 어찌 하나라 칭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신다. 일단은 하나에서 났으니 하나라 칭하리라. 이것이 고집이라는 것을 아마도 하나님 자신도 아셨나보다. " 하나에서 났으니 하나라 칭하겠다 어쩔 것이냐?" 이처럼 들리지 않는가?
 

하나에서 났으니 하나라

 
> 하나님께서 이런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신 데에는 사실 숨겨진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결혼에 대한 숨겨진 비밀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에 대한 숨겨진 비밀인 것이다.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신랑이라 하시고 교회를 그 신부라 하신다. 이 신부가 바로 두 증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두 증인은 사실 한 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두 증인에 의해 십사만사천이라는 무리가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일꾼이 되며 만이천명씩 열두 진주문을 이루게 된다. 이 열두 진주문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의 문지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열방의 무리가 존재한다. 이들의 총체적인 모습이 교회이며 이 교회가 그의 신부인 것이며 그 중심에 서는 자가 바로 두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 신부가 신랑이신 예수님과 결혼하여 하나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 그러나 실제로 개인이 받아들이는 결혼에 대한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실때에 그냥 따로 만드셨다면 어떠할까? 결혼을 해도 둘이다.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이라는 속성을 결코 가지지 못하게 된다. 필멸의 존재라 흔히 말하는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으리라. 그러나 결혼이라는 아주 이상한 주장이 사람에게 영원이라는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 사실 개인에게 있어 실제로 적용될 때엔 이 부분이 조금 다르다. 예수께서 영원한 존재이므로 사람인 우리가 스스로를 부인하여 그의 몸이 되며 예수께서는 우리의 머리가 된다는 것이다.
 
 
 
> 주 앞에 서는 자라는 말은 내 자신이 두 증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교회의 사자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서야한다는 말이다. 보냄을 받은 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결코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써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언젠가 두 증인이 보냄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될 것이다. 이 날은 결코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증인 그가 하는 말은 나와는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양육에 대한 것이다. 저 하나님의 안식에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어떻게 좁은 길을 시작하고 또 그 길을 떠나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길 가운데에서 만나는 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를 말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두 증인인 그가 오면 그는 재앙을 말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가 오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길 바란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