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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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9,436회 13-02-04 15:03본문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 다니는게 예수를 믿는 것일까? 교회를 다니지 않고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사실 이런 질문은 매우 유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치한 일을 이 시대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지 않은가? 가게에서 물건 사듯이 교회란 곳에서 믿음을 살 수 있다고 믿으니 말이다.
교회는 마치 벌거숭이 임금님이란 동화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믿음이란 옷을 팔고 있는 것 같다.
이로 인해 올바른 이성을 가진 이들이 간혹 교회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엔 이들이 모두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말할 수 없다. 만약 말하면 더욱 큰 수모를 당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이다. 그리고 이 교회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다. 땅에 속한 교회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이루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은 영접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잡히셨을 때에도 그들은 예수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일어나 싸우지도 않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회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시대의 교회는 예수를 못박아 죽였던 과거의 이스라엘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시대의 교회가 만약 예수께 속한 교회라면 영적인 이스라엘이라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첫째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으니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첫번째 사망인 자아의 죽음은 이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자아의 죽음은 부모와 형제 아내와 자식 친구 등 지금까지 이어온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으로써 말이다. 왜냐하면 더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은 모든 관계를 부셔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관계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아의 죽음을 통해 얻게 되는 이 예수의 이름은 자신에게는 진정한 죽음이겠으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삶의 진정한 시작인 것이다.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둘째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영생의 길인 이 좁은 길을 가려면 영적인 존재로 반드시 다시금 태어나야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결코 이 좁은 길을 여행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좁은 길이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에 속한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거듭남이라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첫번째 사망인 자아의 죽음이 완성되기만 하면 바로 언약에 의해 이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성령께서 이를 판단하시고 결정하시는 일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성령께서 그 마음에 직접 할례를 베푸심으로 성령의 인침이 이루어진다. 이 인침은 일종의 보증과 같은 것인데 도장을 찍어 새로운 신분을 지급해 준다랄까?
> 예수를 자신의 주로 받아들인 자가 다시금 옛 자아로 돌아가 제멋대로 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 언약은 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번 깨어진 언약은 다시 성립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때문에 자아의 죽음을 인정받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절차가 될 수 밖에 없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셋째 열매가 필요하다. 영적으로 어린 자는 육에 속한 이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장성하게 되면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장성한 자와 어린 자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열매의 유무일 것이다. 만약 열매가 없다면 과연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말은 다시 말해 어린 자가 믿음에 속한 자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육체를 따라 말하면 못났어도 내자식이다. 안비슷해도 내자식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하면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인간적인 발상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비슷해야만 내자식이다. 못나면 내자식이 아니다. 영적인 존재에서는 반드시 좋은 나무에서는 아름다운 열매가 나쁜 나무에서는 못된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이는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왜 아브라함처럼 행하지 않느냐 하신다. 또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하신다. 설마 정말 마귀가 그들을 낳았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신다. 삼년을 나무를 키우고도 열매를 얻지 못하시자 일년 더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갈아 엎으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변론하시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심지어 너희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냐고 물으신다.
> 그렇다! 우리는 나무였던 것이다.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였던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다닌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주일 성수니 전도니 봉사니 헌금이니 하는 것들이 열매가 될 수 없다. 오직 열매는 영적인 것이니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하며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배운 것이어야만 한다. 하나님 안에 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열매들을 보아야 하며 그런 열매들을 우리도 맺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작은 가지일지라도 우리는 열매를 맺기에 충분한 존재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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