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_img3.png



계명을 지킬지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9,549회 07-11-12 21:03

본문

> 사람들은 지킴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결국 완전함에 나아가라는 말로 함축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완전함이란 인간이 바랄 수는 있으나 이르를 수는 없는 그러한 불가능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은 이 완전함에 나아가라는 말이다. 어떻게 이 불가능에 도전하란 말인가?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왜냐하면 이 불가능한 일을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절망을 가져다 주기위해 자기의 아들까지 주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 함도 이삭을 원한 것이 아니라 친히 독생자라도 아끼지 않고 주시기 위함이 아니던가.

 

 

 

>아들이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었다. 아버지께서 무엇을 위하여 그를 보내었는지 아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대속이었다. 세례요한은 예수를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한다. 그가 무엇을 보고 그리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말한 것은 가장 적당한 표현처럼 보여진다.
 

십자가를 지고가는 어린양

 
>깨달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지킴으로 얻는 것이 구원이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에 있다. 무엇을 더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사 자기의 독생자라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다시금 지킬 율법이 없으며 다시 드릴 제사가 없을 것이다. 이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이암아 이 모든 것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완전함에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만일 이를 꺠닫지 못했다면 이는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마치 공짜 티겟을 얻어 즐거워 하는 어떤 이와 같아서 티켓을 얻었으나 그 티켓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을 주심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며 그 아들의 이름으로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다. 나의 이름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바라든지 그것을 이루게 되니 말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어맡김으로써 그 시작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헛된 것을 마음에 품고서야 어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을 바라든지 그 원함을 생각해야하며 그 원함이 무엇을 이루게 될런지 먼저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