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배필 (첫번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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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950회 23-04-13 02:55본문
돕는 배필
첫번째 여자
"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 여자라 칭하리라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
>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에덴이라는 이 장소에서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그 기원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처음부터 그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사람은 성령을 받음으로
인해 생령으로 변화하는 어떤 과정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어찌하든지 그저 육체에 기반을 둔
그런 존재에 가까울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아담은 이 일로 인하여 산영이 되게 된다. 또한 산영이 되었다는 말은 육체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어떤 대칭점에 서게 되며 커다란 비밀을 품고 있는 것이다.
> 노아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육체가 된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성령께서는 영원히 사람을 떠나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성령께서는 다시금 이 세상에 강림하시게 된다. 과연 영이란 무엇이며 육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남자는 무엇이며 여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로 인하여 사람이 죽게 될 것을 염려하시게 된다. 때문에 선악과를 절대로 먹지 말라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했던 사람은 결국 이를 선택하고야 만다.
> 또한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인 여자를 만드신다. 아담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그렇게 여자를 만드셨던 것이다. 사람은 결국 영을 좇거나 육을 좇게 된다. 육신을 좇는 이들은 육신의 생각을, 영을 좇는 이들은 영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노아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그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들은 육체가 되는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여자란 육체를 좇게하는 그 원흉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돕는 배필인 여자는 과연 무엇을 돕는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는 남자로 하여금 영적인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랑의 대상으로써 말이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실에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남자는 머리요, 여자는 그 몸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를 통해 리더라는 어떤 개념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여자는 자녀들을 통해 이 리더라는 개념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 남자는 이 리더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만의 가족을 이루고 사랑에 대해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을, 그리고 사회를, 그리고 모든 인류와 이를 넘어서는 모든 존재들을 이 사랑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그렇게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영적인 여정이라는 것은 본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이시려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의 그 본질인 것이다. 아주 높은 단계의 완전한 사랑인 저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시려 한다는 것이다.
> 여자는 남자와는 많이 다르다. 마치 천사와 사람이 많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불안정해 보이는 것은 분명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에게도 분명 문제는 존재하고 있다. 많은 수의 천사들이 이미 그렇게 타락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두번째 사망의 해는 존재의 부정이며 그들의 영원한 격리이다. 그들은 저 무저갱에 갇혀 그렇게 영원히 죽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분명한 죽음에 해당하며 첫번째 사망인 자아의 죽음보다 오히려 더욱 가혹한 것이라 하겠다.
> 돕는 배필이란 남자에게 있어 육체에 바탕을 둔 그런 성적인 관계에 기반한다. 이를 보면 마치 남성의 성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돕는 배필의 그 역할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돕는 배필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니다. 돕는 배필의 진실은 이러하다. 남성은 성적인 욕구를 매우 부정한 것으로 그렇게 인식하게 된다. 반면 여성은 그런 부정한 욕구보다 아이를 임신할 수 있는 그런 행위로 보기 때문인지 이를 매우 성스러운 의식처럼 그렇게 감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 때문에 진실된 사랑에 기반을 둔 이런 성적인 관계는 남자에게 있어 전의 그 부정적인 인식들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그렇게 돕게 되는 것이다. 여전히 어둡게만 보이는 성적인 충동이 있겠지만 자신의 아내를 통해 이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내를 통해 성적인 욕구를 그저 해소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내를 통해 더 나은 생각이 무엇인지 그것을 배우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는 소통에 관한 문제이다. 남자는 여자와의 은밀한 관계를 통해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 또한 천사들도 인류의 역사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돌아보게 되며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선악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젠가 선악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죄의 종이 되어 첫번째 사망인 자아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이는 소통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리 판단하셨던 것이다. 아담에게 있어 하와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부족한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존재를 통해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그것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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