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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 (두번째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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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877회 23-04-22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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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배필 

두번째 소통

 

 
 > 자는 여자를 통해 소통에 대한 진실을 배우게 된다. 소통이란 자신보다 한참이나 부족한 누군가에게 선뜻 그 손을 내밀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에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 높은 단계에 있는 존재에게 있어 자신보다 한참이나 떨어지는 그런 존재에게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렵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교만이나 겸손처럼 마음에 대한 어떤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하고자 한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겸손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런 섬김은 그에게 있어 매우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 거하신다. 때문에 항상 자신보다 낮은 단계에 있는 그런 존재들에게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낮은 단계에 있는 존재들은 자신보다 매우 높은 지성을 만나게 되면 이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추앙하거나 맹목적인 그런 믿음의 대상으로 그렇게 변질시켜 버리곤 한다. 이런 류는 뒤틀려진 종교적 형태에서 매우 잘 드러나게 된다. 일단 종교적인 형태가 자리잡으면 아무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는 그저 믿음의 영역으로 그렇게 일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 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를 대속제로 주시기까지 하시면서 하나님의 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려 하셨다. 예수께서도 오히려 자신보다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그의 제자들에게 더나은 것이라 하신다. 성령께서 반드시 다시 오셔야만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여기엔 정말로 커다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알 수 있도록 보혜사로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가르치시며 친히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는 것이다.
 
> 잘보면 하나님의 신은 하나님과의 소통의 그 중심에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의 본질인 성령은 비록 무형의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더욱 실존하는 그런 존재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때문에 소통의 중심에 반드시 이 성령께서 함께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이란 하나님의 생각을 공감하는 어떤 상태를 말한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 낮은 단계에 있는 누군가에게 섬김을 행하게 된다면 우리는 곧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높은 곳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 낮은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으시는지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통이란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하나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천사들도 예수님의 일곱 영으로서 이 사역에 동참하게 되며 그 섬김을 통해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의 그 본질인 것이다.
 
> 자의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은 그 아름다움이라 하겠다. 신부가 아름답지 않으면 신랑은 과연 무엇을 위해 그리 애쓰겠는가? 이처럼 우리가 예수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저 버려지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왜 쓸데없이 좋은 밭을 그저 버려두겠는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은 돕는 배필의 그 진짜 역할인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담은 하와를 보고 자신보다 한참이나 부족한 존재라 그리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정반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그 중심에는 분명 아담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담이 진짜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섯째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 하나를 그에게서 취하신다. 그리고 창조의 제일 마지막에 여자를 창조하시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동물들의 반열에 여자를 세우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그 이름을 짓게 하신다. 아담은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자신을 모티브로 했지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한 것이다. 여자는 사실 남자보다도 더욱 완전한 존재로 그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었을까? 아담으로 하여금 이를 깨닫기를 바라신 것은 아니었을까 말이다. 
 
> 천사들은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입었기에 그저 저급한 단계의 미천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리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심혈을 기울여 이 사람을 지으신 것이다. 이미 천사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굳이 이런 지적 생명체를 보란듯이 만들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육체에 기반을 둔 연약한 존재인 사람은 어쩌면 실패작처럼 그렇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육체로는 분명 저 천사들보다 결코 낫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게 된다면 그때도 여전히 그들보다 그렇게 못한 존재라 할 수 있을까? 여자처럼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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