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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첫번째 두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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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787회 23-08-1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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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첫번째 두증인

 

 
"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  
 
 
 수께서는 어떤 높은 산에 오르사 갑자기 그들 앞에서 변하시게 된다. 그 얼굴은 해 같이 빛났으며 그 옷은 빛과 같이 희어지게 된다. 또한 그 곳에는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함께 했었다. 예수께서는 이곳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고 그들로 더불어 말씀하시게 된다.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다가와 저희를 덮는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누군가가 증거한다.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한다. 이 증거를 들은 이들은 모두 다섯이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이다. 
 
> 이 변화산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사건은 꿈이나 이상처럼 그 해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상황 자체가 현실이기는 하지만 현실 속에 구현된 하나의 정교한 이상과도 같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드시 해석되져야만 그 숨겨진 의미가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해석해보면 이러하다. 예수께서 변형되었다 함은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말씀하셨다 함은 이들만큼은 예수를 그 진정한 모습으로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을 말한다.
 
> 구름 속에서 말하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예수에 대해 친히 증거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들은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이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하여 예수의 증인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인은 둘이다. 하나는 모세이며, 또하나는 엘리야이다. 그들은 이렇게 예수의 두 증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모세와 엘리야인 것일까? 왜 그들만이 이토록 특별한 것일까? 사실 그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들의 인식에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본모습을 보고도 별로 이상히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미 예수님께 그렇게 닿아있었던 것이다. 모세는 지각이라는 방식으로, 엘리야는 심령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모세의 지각과 엘리야의 심령이라는 이 두가지 요소는 인식의 대척점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서로 그렇게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지성과 감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선악과와 생명나무 실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남자과 여자에 대한 그런 비밀스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는 차가움과 뜨거움이라는 이 두가지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세의 지각은 율법이나 양심에 기원하고, 엘리야의 심령은 감동이나 공감에 기원한다. 가능성의 열매인 선악과는 결국 선악을 알게한다. 그리고 또하나의 가능성의 열매인 생명나무 실과는 아마도 영생에 이르게 할 것이라 본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결국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는 그저 가능성에 불과한 그런 열매였기 때문이다. 선악과는 선악을 알게하는 데에 있어 분명한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되면 양심이 작동하게 되며 결국은 죄의 종으로 그렇게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 그렇다! 선악과에는 어떤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선악을 알게된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죄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짜 죽음인 우리의 첫번째 사망인 것이다. 또한 생명나무 실과도 분명 영생을 위해 그렇게 디자인 되었을 것이다. 예측해 보자면 재생 코드를 만들어 무한한 생을 살도록 그렇게 디자인 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이는 정말 무식한 그런 아이디어다. 왜냐하면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영원한 무한지옥에 그렇게 떨어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가능성의 열매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 왜일까? 선악과의 결과를 예측하신 하나님께서 이 생명나무 실과는 과연 알지 못하셨을까? 선악과는 율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생명나무 실과는 피흘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로 그렇게 이어지게 된다. 율법은 지성으로, 은혜는 감성으로 그렇게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모세의 지성과 엘리야의 심령이란 이 두가지 인식은 예수 안에서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예수를 만나게 된다. 모세를 통해, 엘리야를 통해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이다.
 
> 에베소 교회의 사자가 성장함으로써 나아가게 되고,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가 성장함으로써 그렇게 나아가게 된다. 일곱교회의 사자들이 그렇게 성장하고 성장하여 저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 교회의 사자가 되었을 때에 그들은 차가움과 뜨거움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성장의 끝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결국은 저 두 증인을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증인이란 저들에게 있어 어떤 목표점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 최종적인 기대값이 바로 저 두증인이라는 말이다. 
 
> 그러므로 두증인이란 모세의 지각과 엘리야의 심령이라는 이 두가지 인식의 요소를 모두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인식의 대척점에 서게 되며 진정한 예수를 그렇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인은 차가움과 뜨거움이라는 이 두가지 요소를 모두 가진 그런 존재여야만 한다. 누군가에게는 뜨거운 마음으로 공감과 용서를,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이성으로 비판과 심판을 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반석으로서 예수의 증인이 되었다. 그는 반석이라는 교회의 터로서 그곳에 함께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교회의 터가 되는 모든 제자들은 그와 함께 바로 그곳에 서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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