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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세번째 엘리야의 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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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624회 23-09-0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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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세번째 엘리야의 심령

 

 
"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 리야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주께서는 어찌하여 네가 여기 있느냐고 그에게 두번이나 반복하여 물으신다. 이에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모두 타락했으며 이제는 자신마저 죽이려 한다고 그리 답한다. 엘리야의 심령이란 과연 무엇일까? 엘리야는 하늘을 닫아 비오지 못하게 한다. 마치 요한 계시록의 저 두증인처럼 말이다. 이는 정말 단순한 그런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또한 자세히 보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들엔 두 증인을 상징하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는 그러한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 엘리야는 모든 문제의 중심에 사실 이세벨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모두 죽일 때에도 그는 이세벨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러더니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도망을 하게 되고 어떤 로뎀나무 아래에 이르러 그저 죽기만을 구하게 된다. 이는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분명 여기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삼손이 정말로 들릴라를 사랑했던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엘리야도 삼손처럼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그러므로 이는 예수님께로 이어져 반드시 그 진실이 드러나야만 한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오리라 했던 그 엘리야라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섰는 천사 가브리엘이 증거하기를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자라 한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무엇이었기에 세례 요한이 갖게 되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저 세례 요한을 통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무엇인지 반드시 배워아먄 할 것이다. 엘리야의 심령이란 엘리야에게 있었던 특심인 저 열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엘리야의 심령이란 모세의 지각과는 다른 어떤 대척점에 있는 그런 인식의 요소로 보아야만 한다. 세례 요한은 자라면서 심령이 점점 더 강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심령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상위적인 영적인 세상에 대해 인식하며 형성되는 강한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이를 인식의 단계를 통해 설명해 보자면 그 첫번째는 눈과 귀를 통해 인식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는 지식을 토대로 하는 인식의 단계이다. 증거나 정황, 사물의 연관성 등을 통해 사건의 재구성을 이루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그 두번째 단계라 할 수 있다. 
 
> 지막으로 세번째는 공감의 단계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 공감이라는 능력을 통해 그 진실에 접근 할 수 있다. 중심의 생각은 실재하는 것이며 공감이라는 능력을 통해 그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은 바로 여기에 포함되며 하나님과의 생각을 자신 안에서 그렇게 공명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야의 심령은 세번째인 이 공감의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속제로 죽으신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게 될 성령의 강림을 그 전제로 하는 것이다.
 
> 엘리야는 변화산에서 예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말이다. 모세의 지각은 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통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들의 그 진실에 근접하게 된다. 반면 엘리야의 심령은 세번째 인식의 단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이며, 그것을 아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두 증인의 진짜 역할인 것이다. 인식의 대척점에 존재하고 있는 두 증인의 시선이 바로 참된 진실을 그렇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때문에 두 증인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예수의 증거를 가진 저 일곱 별의 그 정점에 서는 자인 것이다. 
 
> 때문에 일곱별은 예수의 증인이라는 어떤 시스템에 속하게 된다. 그들은 부르심을 얻은 하나님의 종들이며, 예수님의 오른 손에 붙잡힌 저 일곱 별에 해당한다. 때문에 금달란트를 맡기시는 것처럼 일곱별이라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허락하시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들은 반드시 이 일곱별의 직분을 가진 참된 하나님의 종들을그 터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으니 말이다. 두증인이란 이들의 정점에 서게 되는 자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이들은 끊임없이 그렇게 성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뜨거움과 차가움이란 그들이 이뤄야만 하는 영적인 인식의 두 요소인 모세와 엘리야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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