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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구하는 자들 ( 첫번째 표적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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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3,981회 20-07-0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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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구하는 자들 

첫번째 표적이란?

 


 

"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 ( 요한 복음 2장 중에서... )

 

 

> 적을 보고 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병을 고치거나 죽은 이를 살리거나 어떤 커다란 이적을 행하게 되면 이를 본 사람들은 생각한다. 저가 누구관대 저런 엄청난 기적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표적을 본 자들이다. 사실 그들에겐 표적을 보지 않고는 예수님을 믿을 이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많은 가르치심을 주셨지만 사실 그들에게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은 단지 예수님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 그러나 표적을 보고 믿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아마도 그가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표적을 보고 그는 생각한다. 저분은 진정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로구나. 그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밤에 주를 찾아간 것이다. 그는 과연 무엇을 기대하고 그 밤에 주를 찾아갔던 것일까? 자신은 다른 유대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듣게 되었을 뿐이다. 

 

> 예수께서는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바로 이 사건이 예수께서 행하신 첫번째 표적이라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표적도 있는 것일까? 사도 요한이 말하는 복음서는 이 표적을 따라 이야기들이 기술되고 있다. 그리고 이 표적을 통해 사도 요한은 마지막 표적이 예수님 그 자신임을 설명하려고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어떻게 표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직접 이것이 표적이라고 그리 말씀하고 계신다. 

 

 

 

 

 

>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사람들은 46년동안 지은 성전을 어떻게 혼자서 사흘만에 다시 일으킬 수 있겠느냐 한다. 그러나 잘보면 헐어야하는 성전은 46년동안 지은 그 성전이 맞으나 새로이 일으키는 성전은 전의 그 성전이라 꼭 말할 수만은 없다. 성전이란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이 성전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가 이 성전을 무너뜨릴 것을 주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또한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그들 스스로가 결국은 파기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 하나님께서는 유일한 상속자인 아들을 보내면 저들이 그는 들으리라 하신다. 그러나 저들은 오히려 이 상속자를 죽여 그 유업을 차지하자 한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마지막 기회를 그들 스스로가 결국은 파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을 걸고 하신 그 모든 맹약들은 더이상 아무런 효력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흘만에 예수께서는 다시 부활하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을 그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시게 되는 것이다. 

 

> 이는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못박히신 예수를 바라보는 모든 자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이다. 이것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함을 이룬 것이라 하겠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표적이다. 그러나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어도 오히려 이를 표적이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과연 표적이란 무엇일까? 저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믿지 못하였기에 그 성전을 헐지 않았었다. 어떻게 그들 손으로 성전을 헐 수 있었겠는가? 

 

> 또한 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께서 이런 무리한 일을 말씀하심으로 아무런 표적도 보이지 않고 그저 빠져나가려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에게 보이시는 표적은 그보다 더욱 엄청난 일인 것이다. 율법을 통해 허락하셨던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폐하시고 은혜와 긍휼 아래에서 전혀 새로운 언약을 제시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만 허락되어졌던 기회가 누구든지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허락되어진 것이다. 이는 그 어떤 기적보다도 더욱 대단한 표적인 것이다. 

 

> 러므로 표적을 보고 믿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표적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부터 이 표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우선 표적이란 무언가에 대한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니고데모는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이라 생각한다. 니고데모가 무엇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는 분명 무언가를 보았고 그 무언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이란 증거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해주며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듣게 해주는 그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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