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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구하는 자들 ( 다섯번째 마지막 표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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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3,893회 20-08-1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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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구하는 자들 

다섯번째 마지막 표적

 

 
 > 수님의 마지막 표적인 십자가를 본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옛자아를 내려놓았으며 나의 모든 짐을 예수님께 맡기게 되었다.
  나의 옛자아는 어쩌면 그렇게 실패한 자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 나의 옛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옛자아는
  실패할 수 밖에 없고 또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이라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서 잘못된 판단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사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 나의 옛자아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조금만 더 충격을 주었다면 어쩌면 터져버렸을지도 모르는 그런 상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옛자아는 어느덧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게 된다.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노력을 하여 이뤄야만 할 그런 가치가 세상에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모든 것들이 그저 죽음으로 끝날 것임을 알았기에 그 시작에서부터 흔들려 버린 것이다. 실제로 어둠이 그를 덮으며 그를 그의 몸에서부터 잡아당기는 것을 보았다.
 
> 잠시 무언가를 놓으며 이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옛자아는 무언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기억을 해낸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는 잠에서 깨듯 다시 일어났으며 반드시 하나님을 찾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 후에 시간이 지나 나의 옛자아는 결국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보았고 바로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종착점임을 깨닫는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옛자아의 죽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런 장소였던 것이다. 한알의 밀알처럼 자신이 그렇게 죽어야만 새로운 영적인 자아가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옛자아는 이 말을 믿었다.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오히려 예수께서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지셨기에 이 죽음은 단순한 상징일 뿐 옛자아의 입장에서는 사실 그리 나쁜 제안만은 아니었다. 옛자아의 죽음으로 인해 나의 육체는 어느정도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나는 모든 것들을 다시 배워야만 했고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에 점점 더 익숙해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마지막 표적이다. 영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어떤 비밀이 이 사건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표적이란 영적인 세계의 어떤 비밀을 낮은 단계에 있는 이들에게 단서로써 남겨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과연 어떤 표적인 것일까? 이 사건은 어떤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 도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마지막 표적임을 알았다. 때문에 표적이라는 관점을 통해 요한 복음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표적이라 함은 오병이어의 사건이나 나사로와 같은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오히려 예수님 그 자체가 표적이었음을 설명하려 한다. 요한 복음의 그 시작에 있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수님 그 자체가 진정한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은 이 마지막 표적의 그 이면에 있는 비밀들에 대해서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 하지만 사도 요한이 표적이라는 개념을 따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한다. 마지막 표적이었던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며 그 비밀들을 풀려 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나님의 시간의 시작점이자 그 시간이라는 모든 장소들로 이어져있는 분기점인 이 장소는 오히려 시간의 끝이라 해도 좋을듯하다. 나의 영적인 존재로서의 여정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 예수께서는 무언가를 이곳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내가 너를 위하여 죽노라 하셨고 모든 이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노라 하신다. 그 땀방울이 피가 되어 동산을 적실지라도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라는 표적이 무엇을 이루시려 했는지 그 죽음을 통해 어떻게 생명의 길을 여셨는지 저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예수님께서 쉽게 말을 하고 그 말을 통해 영생의 길이 그냥 열리는 줄로만 아는 것이다.
 
> 예수께서는 자신을 산 떡이라 말씀하신다. 자신의 피와 살을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그리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먹는 자는 영생하는 자가 될 것이라 그리 말씀하신다. 그러나 저들은 알지 못한다. 예수께서 살아있는 표적이 되어 저 말씀을 어떻게 이루어지게 하시는지 말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영적인 세계의 일이며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기적과도 같은 표적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표적이다.
   
>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요나의 표적인 것이다. 영적인 세계의 문제는 사람이 어떻게 천사들과 같아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천사와 사람간의 경계는 무너지게 되었다. 사람은 예수를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며 천사들과 같은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천사들이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사들이 타락할 수 있다면 영적인 존재로 변화한 사람 또한 다시 타락할 수 있지 않겠는가?
 
> 그러나 이는 우리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에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며 더욱 상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발전하여 하나님의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낱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닌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가진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인 것이며 하나님처럼 영생하는 그런 영원한 존재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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