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성령 ( 첫번째 복의 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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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6,998회 21-04-22 07:30본문
진리의 성령
첫번째 복의 근원
"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 요한 복음 16장 중에서... )
> 예수께서는 자신이 떠나야만 비로소 성령께서 오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떠나신다는 것은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가 죽음으로써 이루고자 했던 그 모든 일들의 끝에는 바로 이 진리의 성령이 계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 진리의 성령이 무엇인지 말이다. 첫번째 세상이 멸망당하기 전에는 성령께서 사람들과 함께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육체를 좇게 되자 이로 인하여 사람을 영원히 떠나시게 되는 것이다.
> 그리고 노아를 통해 지금의 세상은 다시금 시작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사람들과 더이상 함께하지는 않으신다. 사람들은 그저 죄의 종이 되어 그렇게 살아갈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의 종이 되었고, 마음으로는 그 정죄를 받아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게 된다. 시간이 지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한사람을 택하시고 그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자 하신다. 또한 그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말이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이를 의로 여기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 많아 더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였을 때에도 그는 주저없이 순종하여 이를 시행하려 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일까? 또한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 첫번째 믿음이란 바랄수 없는 중에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상황과 상관없이 믿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믿음의 결과를 시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란 과연 무엇이라 할수 있을까? 이는 마치 광신도와 같지 아니한가? 이단에 빠진 저 어리석은 광신도들 말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비슷해 보일뿐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라 할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이 믿음이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언약은 할례에 있다. 그의 믿음을 인친 것이 바로 할례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그는 이 특이한 할례라는 것을 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의 근원은 사실 저 예수를 가리킨다. 그 씨가 바로 복의 근원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믿음을 통해 절실한 무언가를 이루려 했던 것이 아닌가 말이다. 성령을 다시 부어주시기는 하겠지만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이는 그의 혈계전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통해 예수의 이름을 갖게 된 자들을 그의 후손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잇는 자들만이 진정한 약속의 자녀들이라 할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서 그의 후손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 언약은 바로 예수님을 통한 성령의 강림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다. 이삭에게도, 그리고 야곱에게도 말이다.
> 그리고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브라함과 똑닮은 그런 믿음이라 할수 있다. 마치 맹신처럼 보이는 그런 믿음을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어리석어 보이는 그런 믿음을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일까? 이는 첫번째 세상에 그 답이 있다고 본다.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진리의 영을 따라 지혜를 배우고 의에 거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천사 중 누군가에 의해 그들은 크게 흔들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그들 입장에서는 천사가 하나님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혼란스러웠고 이를 판단할 수준까지는 되지 못했던 것일까?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들이 이같이 속히 떠나 육체가 됨을 이상히 여기신다. 한편 노아 때에는 가나안이 태어나자 사단이 행한 일을 생각했고,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신듯 하다. 그리고 그 대책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이 믿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 대책이 되는 것일까?
> 영적개념들은 물리적 세계의 규칙들을 크게 흔들수 있으며 상위적인 권능으로 이를 지배할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상위적인 영적개념들을 배울수 있는 그런 유일한 방법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믿음이 매우 방어적인 것임을 아는가? 왜냐하면 이는 사단의 간섭을 배제하도록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사단은 철저히 논리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접근하며 그렇게 조금씩 의심하도록 유도한다. 믿음에 있어 의심이 위험한 그 진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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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있어 믿음은 마치 방패와도 같다. 사단의 증거는 끊임없이 나를 흔들고 괴롭게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그렇게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 또한 삶의 주권을 내어놓는 것이라 할수 있다. 성령의 가르치심은 모든 것들의 진실을 보게 해준다. 하나님의 숨겨진 그 생각들마저 말이다. 또한 믿음을 통해 의를 값없이 얻었으나 그 의를 배우고 행하는 것은 여전히 주안에서도 남아있는 것이다.
> 성령의 진짜 이름은 진리가 아닐까? 예수께서 갑자기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진짜 일은 진리를 알게하는 것,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영생의 비밀을 알게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라는 어리석은 방법으로 이 길을 가야 하는 그 이유는 사실 우리가 그만큼 어리석기 때문이 아닐까? 방패로 우리 몸 전체를 가리우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잡고 그렇게 고집스럽게 가야만 하는 그 이유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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