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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는 자. ( 네번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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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3,995회 20-01-1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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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는 자.

네번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요한복음 15장 중에서... ) 
 
수님의 안에는 어떻게 거할 수 있는 것일까? 성경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므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 한다. 그리고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을 따라 이 계명을 지키면 된다. 그러나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때까지 이 계명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계명의 진정한 모습이 바로 비판이라는 것을 말이다. 
 
> 예수님의 계명은 열매를 위한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하신다. 왜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의 가지이기 때문이다. 포도나무이신 예수께서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그에게 붙어 있으라 그리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은 예수님께 붙어있기 위한 가지의 수단이며 열매를 맺기위한 우리의 간절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 예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아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사랑의 목적이 열매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변화와 성장을 말씀하셨고 또한 더 큰 천국의 비밀도 숨기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이 둔하고 깨닫지 못하심을 인하여 이를 책망하시기까지 하셨다.
 
> 그러므로 새 계명은 변화와 성장을 위한 무언가임을 먼저 깨달아야만 한다. 예수께서는 분명 제자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그것은 말씀이였을 것이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에 거하셨는데 과연 무엇을 하셨겠는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하여 친히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시면서 도대체 무엇을 이루려 하신 것일까?  
 
> 섬김이란 양을 먹이는 것과 양을 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것과 비판으로 바르게 하는 것은 섬김의 진정한 모습이다.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양을 치라 하심은 바로 이로 인한 것이다. 만약 네가 다른 이들보다 더욱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이며 또한 그러하다면 내 양을 치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섬기는 자는 새 계명을 지키는 자인 것이다. 
 
> 예수께서는 친히 섬김으로써 그 본을 보이시고자 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말이다.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은 발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쉽게 변질되고 뒤틀려질 수 있는 것들이다. 때문에 주께서 그 발을 씻기심으로 제자들에게 그 본을 보이신 것이다. 이처럼 제자들은 서로를 돌아보아 예수님처럼 형제 눈에 있는 티를 빼내주어야 한다.
 
> 이런 섬김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장성한 자가 되지 못한다면 이런 섬김은 결코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명은 지키는 자가 열매을 맺게 되고 더욱 성장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 보아야 한다. 섬김을 받는 자보다 오히려 섬기는 자가 더욱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예수님께 이어진 가지와도 같을 것이며 예수의 이름으로 삶을 살아가는 열매맺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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