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의 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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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13회 25-07-25 06:10본문
소자의 실족
"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
> 제자들은 예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누가 큰지 이를 묻게 된다. 과연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인 것일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어떤 이야기를 하시게 된다. 네 손이나 네 발을 찍어버리라? 네 눈을 빼어 내버리라? 산상수훈에서도 이와 매우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소자의 실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소자의 실족이 현실적으로 없을 수는 없다고도 하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로인하여 세상에는 화가 있을 것이라 하신다.
> 지옥의 형벌에 던져지는 이 소자의 실족이란 무엇일까? 제자들은 그저 단순히 천국에서 누가 큰지 이를 알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오히려 소자의 실족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전에 이와 관련된 엄청난 비극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수께서는 한가지 비유를 들어 이에 대해 말씀하신다. 잃어버린 한마리의 어린양에 대한 비유이다. 직접 이 비유를 해석까지 해주시며 이 소자중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하신다.
> 그렇다면 잃어버린 한마리의 어린양은 바로 이 소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소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는 큰 자라 하신다. 또한 이 어린아이 하나를 아예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영접하면 실제로 예수를 영접한 것으로 그렇게 인정해 주겠다고도 하신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제자들은 분명 영적인 의미로 천국에서 큰자가 과연 어떤 자인지 질문을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뜬금없이 이 소자가 천국에서 제일 크다 하신다.
>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의 위험성을 그저 내다보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천국에서 누가 크냐?' 하는 그들의 질문은 그렇게 순수한 것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들의 생각 속엔 예수님의 좌편이나 우편이나 이런 것들은 왕위의 좌편과 우편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권력을 향한 그들의 욕망이 결국엔 교만을 낳게 되고, 저 사단처럼 어린자들을 향한 폭력으로 그렇게 이어지게 될 것이라, 그렇게 염려하고 계셨던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사단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 한다.
> 그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 하신다.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 하신 것이다. 소자의 실족은 어쩌면 천사들의 세계에서 사단으로부터 그렇게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살인의 진정한 모습은 존재의 소멸, 존재의 경멸, 그리고 존재의 부정으로 그렇게 이루어지게 된다. 이것이 무엇이겠는가? 어린자의 실족, 다시말해 소자의 실족은 살인의 진짜 모습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갑자기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소자가 형제라 여겼는지 그는 용서의 횟수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이다.
"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이러므로 천국은...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 놀랍게도 베드로의 추측은 어느정도 정답에 근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질문은 용서의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천국에서 큰자가 아닐까 한 것이다. 그는 통크게도 일곱번을 외쳤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히려 사백구십번이라도 용서를 하라고 그에게 말씀하시게 된다. 그러면서 또다시 비유를 베풀어 말씀하시게 된다. 일만달란트를 빚진 어느 종에 관한 비유이다. 마찬가지로 친히 이 비유를 해석해 주시며 중심으로 그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용서받기는 힘들다고 하신 것이다.
> 사실은 그 횟수가 아니라 중심으로 용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비유가 소자의 실족과 어떻게 이어졌는지 알겠는가? 대상이 되는 이 소자는 잃어버린 어린양에 해당하며, 또한 형제와도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제는 내게 많은 것을 빌리며, 또한 끝나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계속 빌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어리기에 가난한 것이며, 또한 미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 또한 저 일만달란트를 빚진 자처럼 하나님께 그렇게 빚진 자가 아니던가? 저 사랑의 빚 말이다.
> 그 큰 사랑을 받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그 형제를 돌아보는 것이 어찌 마땅치 않겠는가 말이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은 예수를 통한 죄사함으로부터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예수로부터 처음사랑을 배우게 되며 그 섬김의 예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천국에서 진정으로 큰자가 과연 어떤 자인지 그것을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천국에서 정말 큰자가 누구인지 그의 제자들에게 보이고 있다. 지극히 작은 자, 그리고 어린자들을 섬기는 바로 그 자가 진정으로 큰자라는 것을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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