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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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231회 26-06-03 04:50본문
용서
"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 예수께서는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신다. 잘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하시며 이것이 진리라 하심도 알수 있다. 진리란 무엇일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 사실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란 어렵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진리라고도 하신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간음중에 잡힌 한 여자가 이곳으로 끌려오게 된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코자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에게 말씀하신다.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들이 없느냐? 매우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사실 고소하는 자가 있다. 그는 바로 사단이다. 우리를 정죄하며 고소하는 자는 바로 사단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 하시며, 또한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도 하신다.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그러시더니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야 내가 그인줄 알겠구나 하신다.
> 참 알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하신다. 그러나 잘보면 그리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우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다. 이는 자유케 하는 진리가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보면 이 자유가 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함을 알수 있다. 진리가 죄의 정죄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일까? 그런데 어떻게 말인가? 그러므로 예수라는 세상의 빛은 우리 죄로부터 자유케 하는 빛이며, 이를 통해 참된 생명으로 이끄시는 그런 빛이라 할수 있다.
>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신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떤 그인 것이 이 진리의 핵심이 될 것이다. 예수는 과연 어떤 그인 것일까? 과연 어떤 그이시기에 이 죄의 정죄로부터 자유를 주실수 있는 것일까? 세례요한은 말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로다. 예수님께서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임을 믿으라는 것인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든 후에야 비로소 이를 알게 될 것이라 하셨으니, 그렇다면 진리란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다.' 하는 것이 될 것이다.
> 그러나 우리가 이 진리를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과연 어떻게 죄로부터 진정 자유케 된다는 말인가? 사단이 여전히 우리를 고소하고 있는데 말이다. 검사와도 같은 사단은 우리를 일종의 법정에 세우려 한다. 그리고 정죄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케 되기 위해서는 이 법정싸움에서 반드시 승소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죄인이 아니던가? 사단의 정죄로부터 어떻게 우리가 자유로울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렇다면 이 진리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이 될 것이다. 놀랍게도 이 진리의 말씀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가 믿는다면 반드시 승소 또한 할수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이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 소송 자체는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 피고인 우리가 죽은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말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저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은 것이다.
> 죄인된 삶을 인정하고 법정최고형에 해당하는 사형을 당했던 것이다.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피고인을 어떻게 다시 고소한단 말인가? 그러나 사단은 우리를 그리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듯 하다. 죽은 것은 예수이지 우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송사하며 여전히 살아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속임수를 써 거짓된 죽음을 위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신다. 그냥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 하시는 것이다. 사단은 의심하지만 사실 우리는 정말로 죽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말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정말로 죽은 것이며 다시 태어나 새로운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다. 옛자아의 죽음은 예수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리고 옛자아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과는 달리 진정한 죽음, 다시말해 첫번째 사망인 것이다.
> 죄사함이란 무엇일까? 물로 세례를 받는다고 그 죄가 사해질까? 어린양을 제물로 바친들 그 죄가 사해질까? 하나님께서는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하신다. 이 용서가 사실 중요하다.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죄사함의 비밀에 다가가는 그 진짜 방법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죄사함을 주시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또 어떻게 죄사함을 주시는 것일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죄사함을 줄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용서를 해줄수는 있다. 죄사함은 힘들지만 우리에게 죄지은 자에 한해 용서 정도야 해줄순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떻게 죄사함을 줄수 있는 것일까? 죄사하는 권세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 사실 죄사함이란 법적인 문제라고 본다. 법이 정하는 것이 죄라면, 그 죄를 무효화하는 것 또한 법에 의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 죄를 정하셨으니 죄를 사할수도 있는 것이다. 법적으로 말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죄사하는 권세를 아버지께로부터 받았다고 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도들에게 이 권세를 허락해 주시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법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냥 천국이라는 나라에 그가 정하신 법이 있고, 그 법에 의거하여 죄를 정하기도, 또한 사해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사실 용서가 더욱 중요하다. 죄사함보다도 이 용서가 진정한 죄사함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천국에서의 대원칙은 용서하는 자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아니, 중심으로 그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천부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겠다 하시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겠는가? 왜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해야만 한단 말인가? 일만달란트의 빚이라니, 도대체 이건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용서를 배워야만 할 것 같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천국엔 분명 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율법이겠는가? 아마도 그렇치 않을 것이다. 천국의 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일 것이며, 의의 법일 것이며, 또한 사랑의 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용서를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한다면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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