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첫번째 분기점 | 바벨탑의 저주 그리고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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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670회 20-10-04 06:48본문
감람나무 2권 양육의 말씀
바벨탑의 저주 그리고 방언
> 특이한 사냥꾼이라 불리는 이가 있다. 그는 니므롯이다. 여호와 앞에서 그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그가 정말로 사냥꾼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특이하게도 사람을 사냥하는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큰 성을 짓도록 설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일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런 그가 시날 평지에 이르러 큰성 바벨론을 짓기 시작했고, 그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기까지 쌓아 올리게 된다.
> 이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중심에 있는 이 니므롯을 보았으며, 그에 대해 말하시기를 특이한 사냥꾼이라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다. 또한 이 니므롯을 책망하시지도 않으신다. 그저 저들의 경영하는 일을 더이상 금지할 수 없음을 아시고 대책을 강구하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께서는 이 문제의 원인이 니므롯과 같은 사람에게 있다고 그렇게 판단하지 않으셨다.
> 그저 그들의 언어가 하나였기에, 이러한 상황에 도달했다고 그렇게 보시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였던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기로 결정하신다. 그러면 언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 언어라는 것은 소리라는 방식을 따라 생각을 표출하는 의사 소통의 수단이다. 그러나 생각은 소리가 아니다. 생각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형태이며, 오히려 순수한 정보 그 자체로 보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그 정보 자체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하며, 아직 언어로써 구현되지 않은 그 상태 자체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 또한 언어란 소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적인 정보로도 전달된다. 문자와 그림등, 다양한 형태의 수단으로도 그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들은 소리처럼 즉각적이고 편하지는 않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모든 소통을 완전히 단절하고자 하신 것은 아니다. 그저 소리라는 언어의 일부 기능만을 그렇게 혼잡케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형태의 언어가 그렇게 나타나게 된 것은 단지 이 혼잡함의 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 방언이란 자신이 모르는 다른 이들의 언어를 가리킨다. 다시말해 의사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는 바로 그 포인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언어를 혼잡케 하셨던 것일까? 그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어떤 목적이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데 이 언어가 마침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언어를 혼잡케 하기로 결정하신다. 그러나 훗날 오순절 성령의 강림 때에는 오히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여러 방언으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선포하게 된다.
> 이는 바벨탑 때와는 오히려 전혀 다른 양상이었던 것이다. 이 언어가 혼잡해진 것이 오히려 그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성령의 감동을 따라 이 언어의 확장이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영적인 세상에서도 이 언어란 그 소통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기 자신만의 방언으로 그들이 말하게 된다면 어떠하겠는가? 아마도 천국은 매우 혼잡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상에서는 단 하나의 언어를 배우게 된다. 바로 이것이 은사로서의 방언이다. 이는 임시방편으로 주어지는 그런 방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 이 은사로서의 방언은 상위적인 언어체계에 속한 것이며, 결국은 영적인 세상에서 사용하게 되는 그런 언어로써 자리잡게 될 것이다. 바울은 영으로 찬양하며, 영으로 기도하리라고 그렇게 말한다. 이는 방언이 결국은 영의 언어로써 그렇게 자리잡게 될 것을 그가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어란 소리 이전에 생각이라는 어떤 근원적인 정보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은사로서의 방언은 영적인 존재로서 성장해 나가면서 자신의 영을 표출하는 그 수단이 되어준다.
> 따라서 이 방언은 소리라기 보단 오히려 영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당하다고 본다. 영적인 정보 자체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며, 소리라는 수단보다는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에 더욱 중점을 두는 것이라 하겠다. 많은 이들이 이 방언을 통해 성령의 인치심을 확신하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왜냐하면 방언이란 영적인 존재로 변화한 이들에게나 가치가 있는 것이지,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무언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이란 영적인 존재들에게 허락되어진 단 하나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아멘!
Chapter5. 첫번째 분기점 (바벨탑의 저주 그리고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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