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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두번째 분기점 | 안식일을 지키라. (두번째 '안식일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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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680회 21-02-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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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나무 2권 양육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치심
두번째 안식일을 지키라. (두번째 '안식일의 주인')



> 식일은 하나님께 매우 특별하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까지 모든 일을 그렇게 마치시고, 일곱째 날이 이르자 비로소 안식하신다. 그리고 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그 날에 하나님께서 비로소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안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지치지 않으시는 그런 하나님께 왜 이 안식이 필요한 것일까? 또한 필요하지 않다면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께 중요하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신다. 마가는 이를 듣고 안식일이 사실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리 생각한다. 
 
>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이 안식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예수께서 사람을 구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이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는 그런 행위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안식일을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범하게 된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그리 배웠기 때문이다.
 
> 비록 로마의 치리 하에 놓여있기에 사람을 죽이게 되면 로마법에 의거하여 살인에 해당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의거하면 이는 분명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저 안식 가운데 계신 것이 아니라 한다.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그리 주장하신 것이다. 때문에 아들인 자신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하신 것이다. 정말 예수님의 주장이 사실일까? 여섯째 날에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이르러 저 안식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란 말인가?

> 하나님의 시간이란 물리적인 이 빛의 시간과는 전혀 다르다. 무한의 세상에서 유한이란 그저 모두 점에 불과하듯이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이 빛의 시간이란 그저 찰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빛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을 어느덧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이 빛의 시간은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물리적인 빛의 시간은 그저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의 변화를 측정하고 있는 것이다.



 

> 러므로 우리는 시간 속에서 실체적인 변화와 성장을 지켜 보아야만 한다. 빛의 시간은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영적인 존재로 거듭나지 못하는 이들은 어떠한가? 어쩌면 그들은 그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빛의 시간이라는 감옥 말이다. 그 가운데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진실을 알지 못한채 헤어나올 수 없는 죄의 종된 삶을 그저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아 이 구원의 길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누구든지 원한다면 이를 얻기 바란다.

> 빛의 시간이 사람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시간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생각이 그렇게 구현되고 완성되는 것이 하나님의 첫째날인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결국은 마지막 일곱번째 날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그렇게 마치셨기에 이 날에 드디어 안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 칠일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날은 하나님의 것이지 결코 우리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 그러므로 우리는 저 하나님의 안식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그 날이 하나님 입장에서도 매우 특별했기 때문이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 매우 가치있는 것이었으며, 또한 매우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알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다. 또한 복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자녀와 같은 이들에게 이 안식의 의미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저 하나님의 안식이 무엇인지 말이다. 마치 값진 진주를 분별하지 못하는 개와 돼지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또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신다. 이는 과연 무슨 뜻이란 말인가? 마가의 기록처럼 안식일은 그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그런 뜻이란 말인가? 아니면 예수께서 안식일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그런 뜻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하지만, 예수께서는 저 하나님의 안식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단서를 남기신다.

> 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왜 옳은 것일까?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고치는 일조차 꺼려져 그릇된 일이라 그리 믿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아시는 예수께서는 오히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하신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 무언가에 대한 단서인 것이다. 이 단서를 잘 따라가보면 안식이란 일종의 평안한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힘들었기에 쉰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모든 일들을 그렇게 완성하였기에 어떤 평안함에 이르게 된 것이다.

> 그러므로 이 안식일에 오히려 선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 입장에서는 더욱 안식에 가까운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금하신 것은 사실 그들의 선이 아니다. 금하신 것은 쉬지 못하는 그들의 욕심인 것이다. 또한 금하신 것은 믿음이 없는 그들의 행위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안식을 가르쳐 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맹목적으로만 이 안식일에 대해 그렇게 매여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저 안식일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이로 인하여 더욱 분해하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를 잡아 죽이고자 한다.

Chapter6. 두번째 분기점 (예수님의 가르치심 두번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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