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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성경의 해석자 | 생명나무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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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605회 22-10-25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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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나무 2권 양육의 말씀
성경의 해석자
생명나무로의 길



> 은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먹게 한다. 그리고 하와는 아담에게 그 선악과를 주어 먹게 한다. 첫사람이었던 아담은 그렇게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 후 에덴 동산으로 가는 길은 그룹과 두루도는 화염검으로 막히게 되었다. 저들이 선악과를 먹었으니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마저 먹을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는 그리 판단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생명나무 실과는 과연 무엇이었던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선악과에 대해 먼저 알아야만 한다. 선악과는 선악을 알게 하는 어떤 효능이 있다고 그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교묘한 트릭이 숨겨져 있다.

> 그 트릭은 선악과가 사실은 선악을 정말로 알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고작 땅에서 난 열매가 그런 엄청난 능력을 준다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다.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은 지혜에서 나온다. 지혜를 통해 일종의 율법과도 같은 어떤 원칙들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먹는다는 행위로 이러한 지혜의 산물을 어떻게 단번에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지혜는 수없이 많은 경험들과 깊이있는 철학적 사고들을 통해 조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리액션이다.

>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 하신다.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만약 우리 중 하나와 같이 저들이 선악을 알게 되었다 하셨다면 아마도 그 의미는 매우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 하신다. 그렇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만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아는 일을 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어렵고 초월적인 그런 일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이제 막 먹은 사람은 과연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일까?
 
> 그저 눈이 밝아져 자신이 벗었다는 그런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세히 보면 선악과의 효능은 아담에게 어떤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눈이 밝아졌다는 말은 그저 시력이 좋아졌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이 매우 선명해졌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밝아진 그의 인식이 사물이 아닌 자신을 향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문제는 발생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미약하고 벗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악과의 진짜 효능은 지혜가 아닐까? 그리고 그 지혜를 통해 선악을 분별하게 되고 언젠가는 선악을 아는 일에 정말 하나님처럼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악과는 사실 선악을 알게 하지는 않지만 선악과가 부여해준 지혜를 통해 언젠가는 정말로 선악을 분별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이 선악과의 효능은 무엇이란 말인가? 동산 중앙에 자리잡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는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른 결과를 이루게 할지도 모른다. 이미 선악과를 선택한 인류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생명나무로의 길은 전혀 다른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천국은 마치 선악과를 선택한 이들과 생명나무 실과를 선택한 이들로 그렇게 나뉘어지고 있는 것이다.

> 성경은 반드시 그 해석자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성경을 완성하려 하셨고 이미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약의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예수님께 이어져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경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가 그냥 이렇게 끝나버리게 된다면 이는 그저 반쪽짜리에 불과한 그런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가 예수님께로 이어져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경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먹은 인류가 그렇게 죄의 종이 되었고 고통받다가 결국은 멸망당하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 과연 이것이 성경의 진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성령의 목소리에 그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또한 하나님의 종들의 증거들을 통해 그 진실에 다가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로 이어져 닿는 그런 성경 해석에 대해 알아보자. 그 해석은 이러하다. 그룹과 두루도는 화염검으로 막혀있던 그 생명나무로의 길이 다시금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예수로 말미암아 말이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경고하고 있는 그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이란 바로 예수의 새계명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막혀있었던 그 생명나무로의 길인 것이다.  
 
 
"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 요한계시록 2장 중에서... )
 
 
>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이란 바로 영생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새계명에는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영생의 비밀에 관한 것이 된다. 영생이란 과연 영원히 존재해도 되는가란 그런 커다란 명제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생의 비밀은 예수께로 이어져 다시 흐르게 된다. 피흘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를 통해 말이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처음 사랑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영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이다. 
 
> 부르심을 받은 종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나무로의 길이 다시 열리게 되는 것이다. 선악과를 선택한 인류는 결국 선한 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법은 아무리 선할지라도 그 한계가 명확하다. 법의 역할은 그저 선을 알게하는 것일뿐 그 선을 행하게할 그런 강제력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강력한 힘은 선을 강제한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선을 행하는 것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그렇게 내어주셨던 것이 아니겠는가?
 
러므로 사랑이란 선을 강제한다. 자신뿐만이 아닌 타인에게도 말이다. 형제를 비판함으로써 그를 일깨운다. 그렇게 형제를 구원하는 것이다. 죄로부터 말이다. 그러므로 섬김이란 그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라 하겠다. 선악과를 선택한 인류는 결국 죄의 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생명나무로의 길이 남아있다. 이 길은 죄의 종이 되는 그 운명을 뒤틀어 의의 종이 되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자신을 의의 종으로 드려야만 한다. 단순히 칭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의 열매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생명나무의 실과인 것이다. 아멘!

Chapter8. 성경의 해석자 (생명나무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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