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성경의 해석자 | 두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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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618회 23-07-22 00:50본문
감람나무 2권 양육의 말씀
성경의 해석자
두 증인
>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두 증인은 바로 모세와 엘리야를 가리킨다. 모세의 지각과 엘리아의 심령, 이 두가지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곱교회의 마지막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는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이 두가지 속성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모두 같은 것이다.
모세의 지각은 차가움이며, 엘리야의 심령은 뜨거움에 해당하는 것이다. 지성과 감성, 이것은 모두 인식의 요소들이며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두 대척점에 서는 것이라 하겠다.
"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
( 마태복음 17장 중에서... )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
( 마태복음 17장 중에서... )
> 예수께서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아를 만나시게 된다. 이 장면은 분명 어떤 의미가 있다. 이를 해석하자면 우선 예수께서 변형되었다 함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말씀하셨다 하였으니 이들만큼은 예수를 그 진정한 모습으로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구름 속에서 말하는 이는 여호와이시며 그가 증거하시기를 예수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기뻐하시는 자라 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에게 친히 증거하였으니 그러므로 이들은 이제 예수의 두 증인이 된 것이다.
> 잘보면 이는 두 증인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세와 엘리야가 이 두 증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증거를 들었고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증인이 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그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그런 존재임을 그들은 들은 것이다. 또한 예수의 말을 들으라 하신다. 그렇게 그들은 예수의 증인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인은 둘이다. 하나는 모세요, 또하나는 엘리야이다. 그렇다면 왜 모세인 것이며 엘리야인 것일까?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 두 증인은 사실 나중에 신부가 된다. 온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되는 자, 그가 바로 이 두 증인이며 예수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성전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그리고 그 성전을 두른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바로 이 신부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그곳엔 열두 진주문이 있으며 이들은 십사만사천이나 되는 인맞은 하나님의 종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오른 손에 붙잡힌 일곱 별들인 것이다. 모두 예수의 참된 증인들이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얻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모세와 엘리야에게 숨겨져 있는 이 비밀은 참으로 중요하다.
> 우선 모세의 지각은 일종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그런 사고방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매우 차가운 이성을 그 바탕에 두는 것이며 마치 저울을 놓고 그 저울이 기우는 방향을 보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성은 매우 차갑지만 선과 악을 분별하는 데에 있어서는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런 지성은 매우 커다란 맹점이 존재한다. 지성이 보지 못하는 그런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맹점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엘리야의 심령인 공감 능력이다.
> 엘리아의 심령은 일종의 감성적이고 공감하는 그런 사고방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매우 뜨거운 감성을 그 바탕에 두는 것이며 대상의 안쪽으로부터 그 모든 것을 보고 그렇게 느끼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성은 매우 뜨겁지만 선악을 분별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미묘한 그런 차이들을 감지 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일종의 공감하는 능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치우쳐 악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모세의 지각과 엘리아의 심령은 그 균형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 또한 모세의 지각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가깝다. 그리고 엘리아의 심령은 생명나무에 가깝다. 사람의 가능성의 열매인 선악과와 생명나무 실과는 하나는 냉혹한 율법을, 또하나는 뜨거운 은혜와 긍휼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보통 지성에 바탕을 두고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 반면 여자들은 감성에 바탕을 두고 사물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족함을 메꿔야만 한다. 이제 깨닫기를 바란다. 두증인은 두 관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두 증인은 정말 두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 한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두가지 인식의 요소를 균형있게 모두 가진 그런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저 미지근한 상태로 그렇게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그런 명백한 요소들로써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종들은 저 두 증인을 닮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신부는 모든 사도들의 그 목표점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진정한 사도들의 모습은 바로 저 두증인인 신부인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저 두 증인에 그렇게 다가갈뿐 어쩌면 영원히 그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숨겨진 진짜 생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그처럼 변해가고 성장해야만 할뿐 결코 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완전한 증거란 완전한 인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는가? 아무리 수없이 많은 이들의 증거가 넘쳐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완전한 증거란 하나님과 같은 완전한 인식만이 볼 수 있는 그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 두 증인의 인식은 모세의 지각과 엘리아의 심령을 그 토대로 한다. 그러나 사람인 두 증인이 하나님처럼 완전한 진실을 과연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 이는 진실에 최대한 다가간 그런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시지 아니한가?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 어떻게 진실을 보아야 하는지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두 증인을 통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그 진실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진실에 점점 다가갈 수 있지는 않을까? 아멘!
Chapter8. 성경의 해석자 (두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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