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이상의 말씀 | 덮는그룹 그 세번째 겸손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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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483회 25-08-25 11:23본문
감람나무 3권 예언의 말씀
이상의 말씀
덮는그룹 그 세번째 겸손의 왕
"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
>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한다. 그는 분명 그리스도이시며, 왕으로 오신 분이시다. 그는 겸손의 왕으로서 이 세상에 그렇게 오셔야만 했던 것이다. 왜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타셔야만 했던 것일까? 또한 왜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시는 것일까?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살렘왕 곧 평강의 왕이라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겸손의 왕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사단이 바로 교만의 왕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그런 자이다.
사단의 지혜는 솔로몬의 지혜와 같다고 본다. 어쩌면 솔로몬은 처음부터 사단을 상징하는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밧세바를 통해 얻게 된 솔로몬은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심으로 인하여 이름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사랑하신단 말인가? 다윗은 밧세바에게 맹세하여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게 된다.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긴 한 것일까? 다윗이 밧세바에게 맹세하여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 맞냐는 것이다. 그렇게 솔로몬은 왕이 된다.
"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찌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
> 다윗은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그런데 피를 많이 흘렸다는 이유로 그는 이를 허락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한 아들에 대해 말씀하시게 된다. 그는 솔로몬이라 불리우게 될 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솔로몬은 평강의 사람이라. 그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어 영원까지 이르리라 하시게 된다. 하지만 다윗이 낳은 솔로몬은 수많은 이방여자들을 취하였었고, 또한 그들로 인하여 이방신들을 받아드렸으며, 그리고 그는 끝내 돌이키지 않았고 타락의 길을 걷고야 만다.
> 두차례나 되는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는 돌이키지 않는다. 이러한 솔로몬의 행보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셨고, 다윗은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준다. 그러나 평강의 사람, 곧 솔로몬이라는 이름의 진짜 주인은 그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의 진짜 주인은 사실 예수님이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임마누엘이라는 그의 이름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진짜로 원하시는 전은 솔로몬이 지은 그런 전이 아니라, 그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성령의 전이었다는 그런 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아들의 영을 가진 자들은 모두 성령의 전이 된다. 교회인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그런 말이다. 사단의 지혜는 송사하는 것에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는 백성을 재판하는 지혜를 구하였고 그것을 얻게 된다. 이 지혜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겠는가? 현대인이라면 아마도 어느정도는 알 것이라고 본다. 법이 가지는 힘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 된다. 사람을 정죄하는 말의 능력은 마치 생명을 쥐고 흔드는 것과 같다 할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예수의 죽으심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게 된다. 정죄는 예수 안에서 그 힘을 잃게되고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단은 죄와 사망의 법 안에서 왕노릇 하였으나, 예수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왜 겸손의 왕으로 오셔야만 했던 것일까? 사실 두로왕은 별것도 아닌 지혜를 가지고 교만에 빠졌었다. 그리고 사단도 완전한 인이라는 그런 엄청난 찬사를 듣긴 했지만, 그의 가진 지혜는 고작 율법에 관한 것이 그 전부라 할수 있다. 그가 하나님의 마음 같은체 한 것이 하나님께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문제가 될수 없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그저 그가 교만하여져서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인체 했다는 것이 바로 그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를 보내어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여야만 하는지 보여주시게 된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율법을 완성하시게 되고, 그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참된 영생의 길을 열어주시게 된 것이다.
> 선악과와 생명나무 실과가 예수 안에서 그렇게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예수 안에서 나타난 이 선악과와 생명나무 실과는 선악을 알게하는 진정한 지혜의 열매이며 영생에 이르게 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성령 안에서 새로운 영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오른 손에는 일곱별이, 왼손에는 일곱영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인맞은 하나님의 종들이다. 천사들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이들은 모두 처음익은 열매가 아닐까 한다. 예수를 통해 익은 첫열매, 바로 이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한다. 저들이 첫열매라 하였으니 두번째 열매도 있을 것이며 세번째 열매도 있을 것이다. 저들의 섬김은 예정되었던 멸망을 바꾸게 된다고 한다.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을 하여야 하리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인식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인식의 두요소, 곧 모세의 지각과 엘리야의 심령은 사실 선악과와 생명나무 실과 속에 그렇게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율법이라는 차가운 지성과 은혜와 사랑이라는 뜨거운 공감능력은 서로를 견제하며 끊임없이 우리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진실에 서서히 다가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가도 우리는 하나님처럼 그렇게 완전한 시각으로 진실을 볼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은 그 진실에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조금씩은 하나님처럼 그렇게 변해갈수 있다는 말이다. 아멘!
Chapter4. 이상의 말씀 (덮는그룹 그 세번째 겸손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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