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_img5    

      예수님의 산상수훈


율법의 완성자 (두번째 간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579회 23-05-16 22:22

본문

율법의 완성자 (두번째 간음)

 

 

"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 

  

> 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 비유의 해석은 이러하다. 간음이란 배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었다면 그는 이미 마음에 배반을 한 것이다. 오른눈은 주된 눈이요, 오른 손도 주된 손이다. 또한 배반의 결과는 지옥이라 하신다. 그러므로 차라리 불구가 되어 천국에 가는 것이 오히려 낫다 하신다. 음행의 연고없이 아내를 버려도 그 아내로 배반하도록 그렇게 방치하는 것이라 한다.

 

> 이 비유의 말씀은 실제 간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간음이란 그릇된 관계에서의 성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간음이 사실 마음에 있는 문제라 하신다. 마치 더러움처럼 말이다.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고 그저 음욕을 품었을지라도 그는 이미 간음한 것이라 하신다. 그러나 잘보면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 하신 것이다.

 

> 다시 말해 행위의 간음이 아니라, 마음에 간음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그런 말이다. 이는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간음이 실제 간음이라는 그런 뜻이 되기도 한다. 간음의 이면엔 사실 배반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반은 매우 깊은 신뢰에서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다. 마치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서처럼 말이다.

 

> 우리의 오른눈과 오른손이 우리를 배반으로 그렇게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의 눈을 뽑고, 차라리 그 손을 찍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나을지도 모른다. 배반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유다는 예수를 배반한다. 겨우 은삼십에 그를 판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배반이라는 개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혼이라는 관계를 깨뜨리는 그 주범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유다가 은삼십에 예수를 판 행위가 바로 간음인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성령을 배반하고 육체가 된 것이 바로 간음인 것이다. 간음이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배반이라는 어떤 마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통해 둘이 하나가 되게 하는 소통의 비밀을, 돕는 배필인 여자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음욕을 해소하는 그런 수단으로만 그렇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은 육체를 좆아 그들의 아내를 배반하고, 예수를 배반하고, 그의 보내신 성령을 배반하고,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배반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간음이란 아내와 남편사이에서 일어나는 그런 부적절한 행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