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ard_img5

       감람나무 성회는...


좁은 길을 따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스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167회 25-02-06 11:55

본문

좁은 길을 따라...

 

 

 

> 은 문은 선한 목자인 사도를 가리킨답니다. 사도가 없이는 교회는 바로 설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는 교회의 터가 되거든요. 터가 흔들리면 교회는 결국 무너지게 된답니다. 종들은 보통 삯꾼으로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되죠. 천국의 보상을 바라고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처음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될 수 있답니다. 베드로는 부자 청년이 근심하여 돌아가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생각했지요.

 

> 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은 자신이 뿌듯했지요. 그리고 천국에서의 보상이 궁금해졌답니다. 이처럼 종이 그 삯을 바라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삯꾼은 결국 나중된 자가 되어 버리죠. 그 삯에 불만을 느끼고 하나님을 비난하게 되는 것이지요. 삯꾼은 거짓선지자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참된 목자도 아니거든요. 에베소 교회의 사자는 삯꾼보다는 더나은 그런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였지만 처음사랑을 회복하지 못하여 예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죠.

 

> 예수께서 세우려 했던 천국은 바로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터의 역할을 하는 종들에 의해 세워지게 되죠. 예수님의 일곱 교회와 일곱 별이 존재한답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교회는 보냄을 받은 사자인 일곱별에 의해 세워지게 됩니다. 정말로 일곱의 교회가 있고, 일곱의 사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그저 단계를 말하는 것이며,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분류를 말하는 것이죠. 자! 좁은 문으로 나아가십시요. 양들은 목자가 없으면 결국 흩어지고 죽게 될 뿐이랍니다. 

 

> 좁은 문을 지나고 나면, 좁고 협착한 길이 나오게 됩니다. 이 길은 우리를 영적인 여정으로 그렇게 이끌게 되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이 잔이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기도 하셨죠. 우리 죄를 대신 지시는 이 일은 예수님께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나 봅니다. 주께서 이토록 어렵게 십자가를 이루셨으니, 우리 또한 이를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것은 그저 우리마음 편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 죄사함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일종의 결혼을 의미하죠. 예수님은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이랍니다. 한몸을 이룬다는 것이죠. 하나에서 났으니 하나라 하시는 이 결혼에 숨겨진 비밀은, 예수 안에서 우리가 그의 몸이 되는 것이며, 그의 가지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쉽게말해 예수님은 우리의 리더이자,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피리더이자, 백성들인 것이죠. 그렇게 한몸을 이루었으며, 그의 이름을 우리도 갖게 된 것입니다.

 

 

 

> 예수의 이름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예수의 영은 이제 우리의 영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는 그의 아들이 아니며, 그의 영도 우리의 영이 아니랍니다. 일종의 트릭인 셈이죠. 장자의 명분을 산 저 야곱처럼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과 아버지께서는 어떤 명분을 얻게 됩니다. 성령을 부어줄 명분 말이죠. 지금 당장엔 큰 차이가 없겠지만, 일단 성령을 받게 되면 저들이 변하고 성장하게 될 것이라 그리 생각하신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 또다른 보혜사이신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라 하십니다. 또한 살리는 영이라고도 하시죠. 성령께서는 우선 우리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 주십니다. 마음의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 마음가죽을 베어내는 것이죠. 그리고 영적인 자아가 태어날 수 있도록 예수님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아버지에 대해서도요.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고 배우다보면 어느덧 영적인 각성이 이루어지게 되죠. 영적인 존재로 확실히 거듭나게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의 옛자아와의 분리가 매우 분명해 진답니다. 

 

> 자아 안에서 일어나던 육체의 소욕은 잠잠해지고 조금더 쉽게 통제되기 시작하죠. 그러나 육체의 소욕은 더이상 문제거리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육체의 소욕은 그저 백신에 불과했던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어준 육체의 소욕은 영적인 여정에서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시험들의 그 그림자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수많은 진실들을 보며 진리를 배워나가게 되죠. 영생이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말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인 여정이랍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