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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입 속 한 세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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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긍휼 댓글 0건 조회 645회 24-01-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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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라는 행위는 누가 정하는 걸까? 사람들은 모두 범죄자를 비난한다. 마땅히 욕을 해도 되는 대상이며 사회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악이란 누가 정하는가? 요즘 세상에는 다들 알 것이다. 사회가 만든 시스템, 법이라는 것이 오늘날 완전히 변질되어버려 그 쓰임새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허울 속에 숨겨놓았을지 몰라도 법이라는 체계는 사실 이제 그저 권력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통제 시스템으로 전락해버린지 오래이다. 그들이 이익을 취하고 약자를 강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이라는 것을 단지 사회 규범이라는 미명하에 그 목적도 이해하지 못한 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과연 정말 옳은 일이라 믿는가? 오늘날까지 와서도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시스템 하에서 철저히 교육받고 세뇌당하며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주입받는다. 그러니 생각하고 깨달을 필요가 있다. 어떠한 일들은 전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는 일이며 오히려 이를 무지성으로 지켜야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당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주 활동지였다. 매우 번영한 도시였으며 가장 많은 이적을 베푸신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이른 베드로에게 곧 세관들이 나아와 묻는다. 너의 선생이 세를 내지 아니하느냐고 말이다.
이에 베드로는 “내신다“ 라고 답하고는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는 사실 이상한 일이다. 예수님 몫의 세가 베드로의 소관은 아니지 않는가.  베드로는 마땅히 예수님께 먼저 그 뜻을 묻고 답하는 게 합당했을 것이다. 이처럼 베드로는 다소 섣부른 판단을 한 것처럼 보여진다. 
무엇이 베드로로 하여금 그런 대답을 하게 한 것일까?
 
집에 들어오는 베드로를 본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각을 바로 아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그 생각을 물으시며 그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바로 이 세상의 시스템 중 하나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세상 임금들은 타인에게 관세와 정세를 받지만 아들들은 그 세를 면한다.
이 말은 즉슨 이 세가 그들이 항상 말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따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세를 걷는다. 
그렇기에 아들들 또한 그 권력을 함께 누리며 세를 면함 받는다.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또한 누구나 쉽게 납득도 할 것이다. 이러한 부조리한 세상의 구조를 말이다. 
베드로에게 이 말씀이 필요했던 이유는 베드로가 이런 시스템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언가 석연찮으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해 일반적인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는 대답을 하고 만 것이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꾸짖거나 도로 세를 내지 않겠다 말하라 시키지는 않으신다. 그저 설명해주실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이 시스템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세를 내지 않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는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신 것 같다. 이는 그저 세상 원리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세를 내던 안내던 그건 세상 사람들의 이권 다툼에 불과하기에 그 가치 기준 자체가 다른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세를 면함을 받으면 곧 그들의 아들들이라는 반증이라고 생각되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자기 좋을 대로 그들의 편에 선다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기에 저들로 하여금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세를 내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그냥 돈을 주시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의 입에서 한 세겔을 얻어 내라 하신다. 왜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이 일련의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베드로는 본디 어부였다. 그런 그에게 고기는 생계수단의 상징 혹은 세상적인 원초적 욕심과도 같은 의미이지 않았을까? 예수님과의 첫 만남에서 많은 고기를 낚고 자신의 죄인 됨을 부끄러이 여겨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라면 음식을 먹어야 비로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세상에서의 삶에서의 가치란 오직 육체의 소욕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높이시는 가치는 그와는 많이 다르다. 그런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시스템 또한 세상의 시스템과는 매우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엘리야를 위하여 까마귀를 보내어 음식을 주셨듯이 광야에서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듯이 일반적인 행동이나 쓰임새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그 가치, 믿음을 따라 이루어지는 그 모든 일들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베드로에게 세상의 시스템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시스템의 일면을 이 고기라는 수단을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주신다. 단순히 고기를 낚아 팔아서만 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기 입 속에서 한 세겔을 얻게 하심으로써 베드로는 자신이 알고 있던 방법뿐만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다. 이에 그저 믿음을 따라 행동하기만 한다면 필요한 모든 것들은 주께서 예비해주실 것임을 알게 되지 않았겠는가.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라고 생각함에도 불가피하게 세상의 방식을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 염려되는가?
육체에 속한 몸이기에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구태여 납득하는가?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그저 이상에 불과하다 생각하는가?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이는 그저 몰이해에서 나오는 생각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여주셨듯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케하는 이 하나님의 시스템은 복잡한듯 보이나 사실 매우 간단명료하기도 하다. 충분한 이해와 진실한 믿음만 있다면 말이다. 그리하면 베드로가 그러했듯이 더 이상 세상 시스템에 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필요하다면 주께서 고기 속의 한 세겔과 같이 채워주실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더욱 깊이 생각하고 그 근원을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믿음을 따라 행동하자.
어찌 알겠는가? 베드로가 경험했듯 고기 속의 한 세겔을 얻을지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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