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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 (3) 포도원의 품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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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긍휼 댓글 0건 조회 1,371회 22-03-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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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3)

 
  
그 후 어떤 부자 청년 하나가 예수님께 나아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지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온전하고자 한다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하신다
그러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고 말이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사실 영적인 세상에서 땅의 보화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마치 환전처럼 말이다
물론 그 재물이 정말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제 소유를 포기하고 주를 따르는 그 마음을 가치 있다 보시기에 그렇게 하늘의 보화를 주신다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부자 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는 근심하며 돌아가게 된다.
이는 그가 바랬을 터인 영생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었을 터인데도 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이었을까?
 
이를 듣고 있던 베드로는 주께 우리는 그와는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으니 무엇을 얻게 될지를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말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열두 보좌까지 약속하시며 여러 보상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한 말씀을 하신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는 것이다.
 
 
나중 되는 것은 무엇이고 먼저 될 것이라는 건 무엇 말하는 걸까.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으러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 하셨다.
집주인이 고용한 품군들 중 먼저 온 자들은 나중 온 자들과 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자 주인을 원망한다.
먼저 약속한 대로 주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억울함은 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저 삯을 위해 일하는 삯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들의 수고가 그저 삯으로만 계산되며 변환되어진다. 그러나 알다시피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어떠한 자들은 적은 삯을 받더라도 자신의 하는 일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개인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저 삯보다도 어떠한 일을 어떻게 하느냐를 더 중요시한다.
그것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삯꾼은 그 삯이 그에게 가장 가치가 높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렇게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 먼저 된 자들이 생각하는 방식과는 많이 다르게 이루어져 있다.
집주인은 스스로 자신을 선하다 하였다. 단순히 돈을 주고 고용한 관계라면 이를 선하다고 할수 있었을까?
만약 이 일이 정말 단순한 직종이였다면 일을 하고 그에 맞는 삯을 바라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러한 직종들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종들을 부르시는 목적은 단순히 공급과 수요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필요해서가 아닌 그들이 필요로 하기에 기회를 베푸시는 것에 가깝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미 고용될 때부터 하나님의 선의를 입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이 필요에 의해 고용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분명 주인은 선한 것이 맞다. 나중 된 자들은 나중 되었기에, 부족하고 남겨져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었기에 더욱 그 주인의 선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함을 기뻐하여 더욱 열심을 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먼저 된 자들 곧 삯꾼들은 이 일에 동참함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저 삯이 중요했기에 주인을 그저 악하게만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제 보자 이 품군들은 같은 보상을 받은 것이 맞는가? 이 먼저 되었던 품군들은 데나리온만 적게 받은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보상을 놓친 것이다. 그들은 똑같이 고용되어 같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정반대의 태도로 일에 임하였고 그로 인해 각자가 한 일 만큼의 대가를 받은 것 일 뿐이다. 그들이 분해하듯 불공평한 주인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부자는 왜 천국에 들어가기가 그리 힘들다고 하신 것일까?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 하셨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말이다. 부자 청년의 마음은 땅에 쌓아둔 그 재물에 있을 수 밖에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그가 정말로 예수님께 배우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그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할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그는 삯꾼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그에게는 불확실한 하늘에서의 보화보다도 제게 쥐어진 그 재물이 더 중했던 것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삯꾼은 하나님께 결국 외면 당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 또한 베드로처럼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곤 하는 일들이 종종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함으로 그에 맞는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삯꾼의 방식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경계하시고자 이 비유를 베푸신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일하는 것은 오직 주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장케 하기 위해 베푸신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해 하는 일임을 말이다. 따라서 그 선하심에 감사하며 더욱 기쁨으로 노력해야만 함이 마땅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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