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일종의 은밀한 함정을 깔아두신 겁니다…
참쉬운 성경이야기
성경을 읽어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쓰는 겁니다. 그러니 양해를 부탁드려요. 정말 자세히 설명할 겁니다. 잘 들어보세요. 어차피 이곳은 성경을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니까요. 여긴 초급반보다도 더 쉬운 참쉬운 반이랍니다…
참쉬운 성경이야기
5. 간교한 뱀
”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 이어서 가봅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간교한 들짐승들을 만드셨어요. 그것도 아주 심혈을 기울이시면서 말이죠. 그중 교만한 것들의 왕인 드래곤은 사실 수룡이예요. 그 입에서는 불을 뿜으며 그 주변의 물들은 끓지요. 또한 저에게는 아주 견고한 비늘들이 있어요. 그 비늘들은 서로 연하였고 나눌수도 없지요.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고 재채기를 하면 광채가 나요. 이 드래곤은 두려움 없는 그런 존재로 만들어 졌답니다.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인 것이죠.
> 그런데 성경은 이 드래곤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네요. 사실 이유가 있어요. 드래곤은 어느날 하와를 찾아가 말했어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참 웃긴 놈이네요. 제가 보기엔 저 넘은 나중에 못된 정치인이 될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어도 된다고 하셨죠? 다만 그 중에 선악과만을 먹지말라 한 것이에요. 먹고 죽을까봐요. 그런데 저 넘은 아주 간교하게도 하와에게 가스라이팅을 시전하는군요.
> 그런데 순진한 하와 저 가스라이팅에 제대로 당하네요. ‘선악과를 왜 먹지말라 하시지?’ 하와는 생각했어요. ‘죽는다는 게 뭐지?’ 그때 옛뱀인 드래곤은 또 말했어요.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미친게 분명하군요.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이야기를 한다고요? 옛뱀은 도무지 알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가 뭘 안다고 저런 말을 하는 거냐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네요.
> 그러더니 하와는 선악과를 따서 아담에게도 가져다 주어요. 사랑하는 남편이니 이 좋은것 혼자만 먹을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죽는다더니 안죽네요. 하와는 이 사실을 빨리 아담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착한 드래곤 덕분에 하나님의 속내를 알게 된거죠. 아담은 그렇게 돕는 배필인 아내로 인하여 선악과를 먹게 된답니다. 그러자 얼마후에 약효가 도는지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드래곤이 말한 것이 정말 사실이었던 걸까요? 아담은 자신의 눈이 밝아짐을 느꼈어요.
> 그런데 눈이 밝아지자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예를들어 아담과 하와는 옷을 전혀 입고 있지 않았어요. 때문에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일단 급한대로 치마를 만들었죠. 날이 서늘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동산을 거니셨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아담과 하와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죠. 아담은 그 소리를 듣자 왠지 두려워 졌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피했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지요.
> 아담은 하나님께 말했어요.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하셨어요. 그런데 아담은 대답할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아무도 알려준 자가 없었거든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물으셨어요.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했어요.
> 그러자 이번엔 여자에게 물으셨어요.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는 말했어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다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뱀의 이면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저 뱀을 저주하셨어요.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그런데 옛뱀만 저주를 받는게 아니네요. 모든 육축과 들의 짐승들도 함께 받는군요.
> 또한 하나님께서는 알수 없는 이야기도 하세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뭔가 있겠죠. 옛뱀도 숨기는 게 있는데, 하나님이라고 뭐 없겠어요? 여자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세요. 잉태하는 고통이란 해산의 고통과는 달라요. 해산의 고통은 아이를 낳을때 느끼는 고통이지만, 잉태하는 고통이란 말그대로 아이를 낳기위한 모든 고통을 말한답니다.
> 여자는 엄청난 과정을 통해 자식을 낳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아담에게는 음~~ 뭐 별거 없어요. 그냥 아담을 인하여 땅이 대신 저주를 받게 되죠. 이제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답니다. 아담은 수고하고 땀흘려 땅을 갈고 닦아야 하죠. 그래야 먹고 살수 있으니 말이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 선악과를 먹었는데 안죽겠어요? 결국 죽는다네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네요. 많은 의문을 남긴채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는 장면이 나오네요. 그리고 이 때문에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죠. 불순종의 댓가로 쫓겨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생명나무 실과마저 먹을까봐 내보내시는 거죠. 생명나무에도 뭔가가 있나보네요.
>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십니다. 너무 과한것 아닌가요? 그룹들이라뇨? 두루 도는 화염검이라뇨? 네! 뭔가가 있겠죠? 하나님께는 뭔가 있는 겁니다. 많은 비밀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비밀은 어떻게든 예수님께로 그렇게 이어지게 되더라구요. 성경은 사실 예수님이 그 주인공이랍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예수님에 대한 그 증거라는 거예요. 그러니 당연히 어떻게든 예수님께로 그렇게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참쉬운 성경이야기 (5.간교한 뱀)
참쉬운 성경이야기
6. 오병이어
”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
> 참쉬운 성경이야기 오늘은 ‘오병이어’편 이에요.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시험코자 하시죠. 빌립은 돈을 주고 떡을 산다 하더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아도 말이죠. 그는 꽤 계산에 능한 사람이었나 봐요. 반면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한 소년의 도시락에 대해 말합니다. 소년에게는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있었거든요. 대충봐도 사람이 오천이 넘는데 어쩌자는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때 안드레의 믿음이 통했는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 잔디에 앉게 했어요.
> 그리고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들의 원대로 나눠주시게 되죠. 그런데 이 오병이어로 얼마나 나눠줄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축사란 과연 뭘까요? 그냥 감사기도였을까요? 예수께서는 축사라는 것을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전에 엘리야 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죠?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일 말이에요. 예수께서는 떡을 가지시고 축복하시며 비슷한 말을 하신게 아닐까해요.
> ‘여기 모인 이들이 모두 족할때까지 떡과 고기가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거죠.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땅에 떨어지지 않아요. 어쩌면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걸지도 모르구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시랍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 말씀은 이루어지게 되겠죠. 무슨 무한복제라도 되는 걸까요? 아니면 엄청 커지기라도 하는 걸까요? 어쨌든 오천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을수 있었답니다. 참으로 놀라운 그런 일이지요.
>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도 하셨어요.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무려 열두 바구니나 되었지요. 버려지는게 아까웠던 걸까요? 담에 또 먹으려고 하셨던 걸까요? 뭔가 있겠죠. 사람들은 이 표적을 보고 놀라며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했답니다. 빌립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안드레는요? 빌립은 이 표적을 보고 더욱 믿음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요?
>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을 억지로 붙잡아 임금으로 삼고자 했어요.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피해 다시 산으로 혼자 떠나가시죠.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기 시작하는 거에요.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고 있는데 바다 위로 누군가가 걸어 배에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어요. 제자들은 매우 두려워 했죠. 그런데 그 사람이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어요. 바로 예수님이었던 거예요.
> 사람들은 분명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지 않았음을 보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죠. 할수 없이 그들은 그냥 가버나움으로 갔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 예수를 만나게 되죠.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하셔요. 또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도 하시구요.
> 그런데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꽤나 인상깊었나 봐요. 그들은 계속 떡타령을 합니다. 또한 만나 이야기도 하구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죠. 참 말귀가 어두운 사람들이에요. 예수님께서는 이제 대놓고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 뭔가 대화가 안된다랄까요? 예수님께서는 떡의 본질이 생명이라고 말하고 계시죠. 광야에서 주신 만나가 사실은 떡이 아니라 생명이었다는 거에요. 사단은 예수를 시험하여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해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답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요. 사람에게는 분명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답니다. 그러나 그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죠. 결국 말씀은 우리가 먹어야 할 생명의 떡이었던 거에요. 아멘!
참쉬운 성경이야기 (6.오병이어)
참쉬운 성경이야기
7. 생명의 떡
> 참쉬운 성경이야기 생명의 떡으로 이어집니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 오늘은 조금 많이 어려운 이야기에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거에요. 많은 제자들도 시험에 들었고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뭐가 그리도 어려웠던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 하십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냥 지뢰였군요. 빅지뢰, 사람들은 오병이어라는 지뢰를 밟고 정신이 몽롱해졌던 것 같아요. 떡에 정신이 팔린 이들은 도무지 들을 줄을 몰랐어요.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
>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 하셨고, 또 하늘에서 내려왔다고도 하셨어요.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모두를 다시 살리겠다고 하시네요. 그러므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된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걸리는 게 많았어요. 일단 요셉의 아들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 왔을리가 없었죠. 그리고 여기에다 한술 더떠서 예수님은 자신이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자신의 살이라 하시죠.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제 살을 주어 먹게 하겠다는 거야 한거죠.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
> 예수님께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하셨어요. 이건 뭐 ‘예수천당, 불신지옥’보다 더한거 같네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아무래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많은 불만이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사람들은 혼미해졌고 여기저기 수군거리기 시작했어요.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으수 있느냐?’ 하게 되었죠.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요.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자가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참 답답한 일이었죠. 예수님 보시기엔 오히려 그들이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자신은 저들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내놓아야 하는데 저들은 도무지 믿지 않았던 거죠. 답답한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도 하시죠.
> 이 일로 인하여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열 두 제자에게도 이르시기를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죠. 그런데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하죠. 베드로는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한 사람 같아요. 어떻게 저런 대답을 할수 있었던 걸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에서도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이 말씀은 바로 가룟 유다를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가 예수를 팔 자인 것이죠.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어요. 어쩌면 떠나가게 한걸지도 모르죠. 걸림이 되는 이야기를 하심으로써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저희 보는데서 실제로 이전 있던 곳인 저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거에요. 저희에게 걸림이 되는 것은 그저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는 그 부분이었던 걸까요?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니라요?
> 오늘 참쉬운 성경이야기는 참어려운 그런 이야기가 되었네요. 그런데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살과 피가 무엇인지 알수 있는 그런 시대에서 살고 있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 하셨는데 우리는 정말 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계속 진실만을 말씀하셨어요.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그저 우리들인 거죠. 그런데 사실 예수님도 알았을 거에요. 저들이 믿지 못할거라는 걸요. 우리가 믿지 못할거라는 걸요.
> 가룟유다는 믿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은삼십에 판답니다. 유다는 믿지 못했던 거에요. 살리는 것은 영이라는 것을요. 예수님은 저 위에서 났고 보냄을 받아 이곳에 내려오셨다는 것을 그는 믿지 못했죠. 그래서 판거에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세요.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는 참으로 하늘로서 내려온 산떡이었던 것이죠. 아멘!
참쉬운 성경이야기 (7.생명의 떡)
참쉬운 성경이야기
8. 참 포도나무
”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 참쉬운 성경이야기 오늘은 ‘참 포도나무’편 이에요. 예수님께서는 참 포도나무라네요. 우리는 그의 가지이고요. 그런데 여기에 농부라는 무서운 분이 계세요. 농부는 지나가면서 막 가지를 짤라버리지요. 농부는 열매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열매를 맺게하기 위해 가차없이 가지들을 치거든요. 그런데 사실 농부는 하나님이시랍니다. 떨고있는 가지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안에 거하면 열매를 반드시 맺게 된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해주신 말씀으로 이미 깨끗하게 되기도 했구요. 아무래도 가지가 더러우면 농부는 그냥 짤라버리기도 하거든요.
> 물론 가지를 깨끗하게 씻겨주기도 하지요. 이 죄사함은 사실 열매를 위한 것이랍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 끝없는 제사를 드려왔어요. 그런데 그게 다 열매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성령을 부어주신답니다. 열매를 위해 말이죠. 사실 우리는 가지이니까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서운 농부가 출현하게 되겠지요. 결국 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는 말라버리게 될 거에요. 사람들이 이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른답니다. 그냥 뭐 그렇다고요.
> 하지만 절망하지 마세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필승의 전략이 있으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하십니다. 그러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하신거죠. 그런데 도대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예수 안에 거하는 거요. 교회 다니라는 말일까요? 헌금하라는 말일까요? 아니면 봉사? 선행? 뭐 그런거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아닙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새계명을 지키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죠.
> 예수님께서는 과연 누구를 사랑하실까요? 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겠죠. 아예 대놓고 새계명도 주셨어요. 이걸 지키면 된다고 말이죠. 그런데 새계명은 생각보다 어려워요. 일단 새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에요. 성공의 대원칙이죠. 나처럼만 해. 그런데 무려 예수님이시잖아요. 뭐 어쩌라는 걸까요? 예수님처럼 사랑하라고요? 이게 말이 돼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신게 아니니까요. 잘보면 서로 사랑하라네요. 그 대상이 있었군요.
>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로를 사랑하라잖아요. 여기서 서로란 예수님의 제자들인 열둘정도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한가지만 알면 되겠네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설마 가족처럼 이라든가, 아니면 연인처럼 이라든가 그런건 아니겠죠? 여기서는 친구처럼 이랍니다. 친구의 사랑이 가장 좋다네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친구처럼 사랑한다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저 제자와 스승, 혹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될 뿐이죠.
> 과연 예수님의 사랑이란 어떤 걸까요?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야 새계명도 지킬텐데요. 그러나 다행이네요. 이럴줄 아시고 아예 한가지 예를 들어주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주와 선생으로서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주는 것이 합당하다 하십니다. 그렇다고 정말 발을 씻겨주라는 그런 말은 아니겠죠? 설마, 아니죠?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그 본을 보이셨어요. 발 씻겨주는 것 말고요. 말로 씻겨주는 것 말이에요.
> 네! 그렇답니다. 발을 씻겨주는 행위는 온 몸을 씻겨주는 행위와는 조금 달라요. 발은 조금 더럽혀진 것을 의미하죠.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보면 조금씩은 타협하고 또 조금씩은 변질된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아 이를 교정해 주어야만 해요. ‘비판과 헤아림’은 그 발을 씻겨주는 행위인 것이죠. 물론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어서는 안되겠구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말이죠. 그래야 밝히보고 형제의 눈에 있는 그 티를 빼줄수 있으니까요. 아멘!
참쉬운 성경이야기 (8.참 포도나무)